스티브 오 스미스의 2025 F/W 컬렉션
컬렉션에 사용한 드로잉
디자이너 스티브 오 스미스

2025 F/W 컬렉션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았나?
이번 컬렉션은 두 화가의 ‘드로잉’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태생의 파벨 첼리체프(Pavel Tchelitchew)가 그린 에로틱한 셰피아 드로잉과 절제된 선이 돋보이는 화가 르네 그뤼오(René Gruau)의 잉크 일러스트. 두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에너지, 감정, 속도감이 이번 컬렉션에 영감을 주었다.

옷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입은 듯한 미감이 인상적이다. 작업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 바란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제품의 구조를 역순으로 구성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기법을 사용했다. 잉크 특유의 묽은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오간자 위에 드로잉한 튈과 크레이프 드 신을 겹겹이 레이어링했다. 옷 자체를 하나의 드로잉으로 바라본 셈이다.

원색이 주를 이루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과 달리 최근의 컬렉션에서는 색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톤, 소재, 볼륨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난 두 시즌에는 연필과 흑연 스틱으로 드로잉한 반면 이번에는 잉크로 표현 범위를 넓히고 잉크 특유의 번진 듯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다.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과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을 거쳤다. 두 패션 스쿨의 커리큘럼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RISD는 예술 중심의 학교로 파운데이션 과정 동안 드로잉 수업을 집중적으로 한다. 유화나 머신 니팅처럼 다양한 기법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그 반면에 CSM은 패션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는 곳이다. 업계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뒤 입학했기 때문에 실무적인 방향으로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두 곳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입체적인 작업 방식을 완성한 것 같다.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Harry Lambert)와의 인연으로 해리 스타일스와 에디 레드메인의 의상을 담당했다.
해리 램버트는 아마 CSM 졸업 쇼에서 내 컬렉션을 본 것 같다. 그때 홍보를 위해 수트 한 벌을 빌려준 일이 계기가 되어 해리 스타일스와 에디 레드메인을 위한 커스텀 의상까지 만들게 됐다.

한 인터뷰에서 “아직 1% 정도밖에 못 왔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드로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합니다”라고 했다. 드로잉을 통해 무얼 얘기하고 싶나?
드로잉을 하면 할수록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그 변화가 옷을 만드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종이에 그린 드로잉과 완성된 옷이 계속해서 서로의 영감으로 순환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다뤄보지 않은 컬러나 재료를 사용할 때 생길 변수가 기대된다.

당신의 컬렉션 룩을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시처럼 여운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가는 시대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담아 그린 선이 몸 위에서 입체화될 때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아닐까.

예술, 감정, 의복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당신의 최종 목표가 무언지 궁금하다.
드로잉을 하는 것.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