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패션 인사가 런던에 모이는 상징적인 시상식, ‘2025 패션 어워즈‘가 성황리에 개최됐습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영국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 이하 BFC)가 주최하는 ‘2025 패션 어워즈(The Fashion Awards 2025)’가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개최됐습니다. 배우 겸 감독 콜먼 도밍고(Colman Domingo)가 사회를 맡아 무대를 이끌었죠.

올해 시상식은 특히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사라 버튼(Sarah Burton),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Grace Wales Bonner)로 이어지는 ‘브리티시 트리오’가 주요 타이틀을 휩쓸며, 영국 디자이너들의 강력한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자리였는데요. 이미 지난 9월, 후보 명단이 공개됐을 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주요 디자이너 부문의 수상자들부터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메인 디자이너 부문

Sunday Rose & Jonathan Anderson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영예로 손꼽히는 ‘올해의 디자이너상’에는 조나단 앤더슨, 미우치아 프라다, 글렌 마틴스, 마틴 로즈 등 현재 패션계를 이끄는 거장들이 후보로 이름을 올렸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트로피는 조나단 앤더슨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올해로 3년 연속 이 타이틀을 거머쥐며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는데요.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남성복과 여성복을 모두 총괄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JW 앤더슨 역시 견고히 유지하며 그야말로 숨 가쁜 한 해를 보낸 그는 영국 출신 글로벌 탑 디자이너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올해의 ‘영국 여성복 디자이너상’은 지난해 9월, 오랜 시간 몸담았던 알렉산더 맥퀸을 떠나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롭게 합류한 사라 버튼이 수상했습니다. 그는 구조적인 아워글래스 실루엣과 절제된 우아함, 여성성을 기리는 서사를 앞세운 2025 F/W 데뷔 컬렉션을 통해 지방시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죠. 그리고 동명의 브랜드 웨일스 보너를 이끄는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국 남성복 디자이너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됐습니다. 최근에는 에르메스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발탁되며, 약 37년 만에 브랜드에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선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는 문화와 스포츠에서 영감받은 남성복을 정교한 조형미로 풀어내는 디자이너로 평가받으며, 감각과 영향력을 겸비한 차세대 디자이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급진적인 실루엣과 서브컬처 감성을 하이패션의 언어로 풀어내며, 새로운 시대의 비전형적 미학을 제시한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뱅가드상’의 첫 번째 주인공은 딜라라 핀디코글루(Dilara Fındıkoğlu)였습니다. 그는 펑크, 고딕, 페티시 등 서브컬처 코드에 페미니즘·종교·정치적 메시지를 결합해 강렬한 여성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올해 신설된 이 상의 취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크리에이티브 & 컬처 부문

크리에이티브 & 컬처 부문에서도 눈에 띄는 수상자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 출신 슈퍼모델 아녹 야이(Anok Yai)는 최근 1년간 주요 하이패션 캠페인과 에디토리얼을 섭렵하며 패션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끝에, ‘올해의 모델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프라다 쇼를 연 두 번째 흑인 모델이자 여러 국제 보그 커버를 장식한 얼굴로, 런웨이 안팎에서 다양성과 대표성을 확장해 온 인물로 평가받죠. 이어 ‘문화 혁신가상(Cultural Innovator Award)’은 래퍼이자 배우로 활약 중인 리틀 심즈(Little Simz)에게 돌아갔는데요. 그는 사우스뱅크 센터의 멜트다운 페스티벌에서 역대 최연소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음악은 물론 패션과 컬처 전반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큐레이션 역량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또한 올해는 영화 의상 디자인의 문화적 영향력과 서사를 조명하는 새로운 부문, ‘올해의 코스튬 디자이너상’이 신설되며 더욱 풍성한 수상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영예의 첫 수상자는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Kate Hawley). 그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퍼시픽 림>, <크림슨 피크>, <프랑켄슈타인> 등을 함께 작업해 온 오랜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죠. 섬세한 공예성과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극의 분위기를 완성해 낸 그의 작업은 영화와 패션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롭게 조명받았습니다.

이에 더해, 래퍼 도이치(Doechii)의 전담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한 샘 울프(Sam Woolf)는 그래미, 멧 갈라,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등 주요 무대에서 선보인 인상적인 룩을 통해 ‘판도라 스타일 모먼트상(Pandora Style Moment of the Year Award)’을 수상했으며, 헬무트 랭의 미니멀리즘 미학을 함께 구축하고 1990년대 케이트 모스의 아이코닉 화보를 남긴 故 멜라니 워드(Melanie Ward)에게는 ‘유작 패션 공로상(Posthumous Outstanding Contribution to Fashion Award)’이 추서됐습니다. 아울러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통해 패션과 예술, 리테일의 경계를 허문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아드리안 조프(Adrian Joffe), 디콘 보든(Dickon Bowden)은 ‘이자벨라 블로우상(Isabella Blow Award for Fashion Creator Award)’을 수상하며, 창조적 공간이 문화 전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다시금 증명해 보였죠.



공로상 & 특별상 부문

한편, 이미 사전 공개된 공로상 및 특별상 수상자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장인정신과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럭셔리 하우스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Outstanding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으며, 디올의 CEO이자 LVMH 그룹 이사회 멤버인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는 신진 디자이너 육성과 창의적인 인재 발굴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받아 ‘특별 공로상(Special Recognition Award)’의 주인공이 됐죠. 두 인물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패션 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올해 시상식의 또 다른 특별한 순간은 샤넬이 영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특별 공로상‘를 수상한 장면이었는데요. 영국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무용에 대한 샤넬의 오랜 후원을 오마주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축하의 의미를 더했죠. 이어 15년간 영국 디자이너들을 꾸준히 지원해 온 BFC 패션 트러스트(BFC Fashion Trust)와, 루루 케네디(Lulu Kennedy)가 이끄는 대표적인 신진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패션 이스트(Fashion East)도 차세대 크리에이터 육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부문을 함께 수상했습니다.

올해의 ‘블루’ 카펫

올해는 전통적인 레드 대신 ‘블루 카펫으로 꾸며져 한층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 위를 수놓은 여러 화제 중 하나는 모델 아멜리아 그레이(Amelia Gray), 가수 아니타(Anitta) 등이 착용한 H&M x 스텔라 맥카트니의 협업 컬렉션이었습니다. 2026년 봄 출시를 앞둔 이 캡슐은 지속 가능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이패션과 리테일 브랜드 협업의 다음 스텝을 보여준 상징적인 컬렉션이죠. 이에 더해, 가수 엘리 굴딩(Ellie Goulding)은 윌리 차바리아의 블랙 수트 룩으로 등장해 블루 카펫 위에서 직접 임신 소식을 전하며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이처럼 올해의 카펫은 단순한 포토세션을 넘어, 브랜드 협업과 라이프 이벤트, 이미지 메이킹이 한데 어우러지는 문화적 플랫폼이자 마케팅 무대로 기능하며 시상식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4월, 로라 위어(Laura Weir)가 BFC의 신임 CEO로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시상식은 런던 패션 위크 참가비 면제와 장학 제도 확대 등 포용성을 강화하려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런던이 여전히 패션과 문화, 정치적 메시지가 교차하는 글로벌 패션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각인시키며 막을 내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