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웨이스트의 안정감이 지나가고 로우라이즈의 반항적인 물결이 거세던 요즘, 패션계의 시계가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려 19세기 초 영국 리젠시 시대로의 회귀입니다.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허리선, 몸을 타고 흐르는 우아한 드레이프. 2026년 패션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리젠시 코어(Regency-core)’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우아한 열풍의 진원지는 역시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입니다. 지난 1월 29일, 전 세계를 다시금 설레게 하며 공개된 시즌 4는 단순히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코스튬 가이드가 됐습니다. 특히 상징적인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쏟아져 나온 화려한 드레스와 리본, 손끝까지 우아함을 채우는 글러브는 시청자들에게 로맨스만큼이나 강렬한 미적 임팩트를 남겼죠. 서사가 흐르는 곳에 스타일이 흐른다는 말처럼, 드라마 속 로맨틱한 무드는 그대로 우리의 옷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리젠시 코어라 부르는 이 스타일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가슴 바로 아래에서 절개되는 엠파이어 웨이스트와 수직으로 길게 떨어지는 칼럼 라인입니다. 상의는 코르셋처럼 구조적인 보디스로 형태를 잡고, 스퀘어 네크라인이 목선을 시원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에 퍼프 슬리브가 볼륨을 더하면서 실루엣이 한층 또렷해지죠. 리본, 레이스 트리밍, 진주 장식은 과하지 않게 들어가도 분위기를 충분히 완성합니다. 색채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아이보리와 파우더 톤 같은 로맨틱한 팔레트가 중심을 잡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없이 부드럽게 끌어올리죠.

디자이너들은 리젠시 코어를 저마다의 화법으로 변주합니다. 2026 S/S 쇼를 살피면, 단순한 재현을 넘어 각 하우스의 미학과 결합해 새로운 인상으로 재구성한 흐름이 보입니다. 우선 디올(Dior)은 큼직한 보우 장식과 레이스 장식 그리고 파스텔 톤을 전면에 내세우며 조나단 앤더슨 특유의 미학으로 동시대적 감각을 덧입혔습니다. 특히 드레이프가 살아 있는 가운과 레이스 드레스가 컬렉션의 로맨틱 코드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에르뎀(Erdem)은 플로럴 패턴과 정교한 재단이 맞물려  장식적인 요소들이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맞췄습니다. 리젠시 코어를 논할 때 리본의 대명사인 시몬 로샤(Simon Rocha)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이 곧은 드레스에 은은한 패턴을 가미하고 소매의 변주를 줬죠. 진주 장식이나 롱 글러브를 활용해 페미닌한 인상을 한층 또렷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루이 비통(Louis Vuitton)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퍼프 소매의 입체감과 스퀘어 네크라인을 강조한 룩을 선보이며, 이 흐름을 보다 고전적으로 풀어냈습니다.

2026 S/S 컬렉션에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의 리젠시 코어는 전체적인 실루엣보다 한 점의 디테일에 집중합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엠파이어 웨이스트 드레스는 줄어들고, 리젠시 시대의 스타일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방식이 포인트입니다. 에르메스와 프라다의 컬렉션을 보면 이해하기 쉽죠. 에르메스(Hermès)는 스퀘어 네크라인에 집중합니다. 크롭 톱이나 스퀘어 라인의 하네스를 입고, 패턴 스카프를 레이어드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프라다(Prada)는 스퀘어 네크라인을 살리되 셔츠와 레이어드하는 방식을 택했고, 파스텔 컬러 톤은 유지하면서 실루엣에는 변주를 줬습니다. 여기에 롱 글러브를 함께 매치해 우아함을 배가했죠.

트렌드의 정점에 서 있는 셀럽들의 스타일에서도 리젠시 코드는 이어집니다. 헤일리 비버는 스퀘어 네크라인과 시어한 텍스처, 크롭 톱으로 하이웨이스트 비율을 만들고 블랙 톤으로 정리해 모던한 룩을 완성했습니다. 제니는 강렬한 레드 보디스 드레스로 스퀘어 네크라인의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시선을 붙들었죠. 리사의 룩도 인상적입니다. 시어한 퍼프 슬리브 드레스에 블랙 리본과 코사주, 롱 글러브를 더해 페미닌한 결을 살리면서도 전체 무게 중심을 안정적으로 잡았습니다.

이처럼 과거를 그대로 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런웨이의 모델부터 동시대의 아이콘들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춰 리젠시 코드를 다르게 풀어내며 자신만의 미감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으니까요. 허리선을 살짝 올려보고, 리본이나 진주 같은 장식을 한두 지점에만 정확히 얹어 보세요. 이런 작은 디테일로도 룩의 인상은 충분히 달라집니다. 결국 2026년의 리젠시 코어는 거창한 코스튬을 재현하는 유행이 아니라, 우아함과 낭만을 디테일로 완성하는 흐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