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W CHLOÉ COLLECTION
메종 드 유네스코의 브루탈리즘 공간. 물안개 사이로 체크 스커트를 휘날리며 걸어 나온 모델들은 조니 미첼의 레이디스 오브 더 캐니언과 케이트 부시, 그리고 칼 라거펠트 시절의 끌로에를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케메나 카말리가 ‘헌신(The Devotion Collection)’이라 이름 붙인 이번 컬렉션은, 옷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바치는 사랑의 고백이었다.
끌로에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계보를 잇는 카말리가 이번 시즌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19세기 네덜란드 포크 코스튬이다. 레이스 보닛을 쓰고 꽃무늬 보디스를 입은 소녀들의 사진에서 시작된 리서치는 어린 브룩 쉴즈, 90년대 초 케이트 모스, 70년대 케이트 부시로 이어지며 소녀 문화의 계보를 그렸다. 카말리에게 ‘포크’란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믿음과 가치, 그리고 어머니에서 딸로 전해지는 소중한 수공예 옷을 의미한다.
런웨이를 채운 55벌의 룩은 그 철학의 손에 잡히는 증거였다. 러플 미디 스커트와 박시한 테일러드 블레이저의 조합으로 시작된 쇼는 티어드 무슬린 스커트와 바랜 체크 프린트의 볼륨 드레스, 마이크로 플로럴 퀼팅 스커트, 손뜨개 티롤리안 스웨터로 이어졌다. 끌로에의 상징인 블라우스는 빅토리안풍으로 변주되었고, 테일러드 재킷에는 네덜란드 전통 의상의 크라플랍(어깨 요크)이 탈착 가능한 구조로 재해석되어 얹혔다. 패치워크 재킷과 손뜨개 카디건에는 자수, 뜨개질, 크로셰가 한 벌 안에 공존했다. 25미터의 실크 시폰을 겹겹이 쌓아 올린 언더스커트, 손자수 블라우스 위의 미세한 꽃무늬. 15분짜리 쇼에서는 눈에 잡히지 않을 디테일들이지만, 그 불규칙한 손맛이야말로 카말리가 말하는 ‘인간적인 옷’의 핵심이다.
깅엄은 컬렉션 전반을 관통하는 패턴으로, 물결치는 스커트부터 시어 맥시 드레스, 몸을 타이트하게 감싼 블라우스까지 다양한 실루엣에 등장했다. 퍼넬넥 코트는 네이비 나일론으로 돌아왔고, 풍성한 퍼프 슬리브와 발목에 주름을 잡은 팬츠는 카말리 끌로에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네 마리 말이 달리는 실버 버클 벨트는 끌로에 특유의 승마 감성을 지켜냈다.
목가적인 드레스와 포크 감성은 자칫 가정적인 여성상을 미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카말리의 의도는 분명히 그 반대편, 자연을 지키고 정신적 가치를 믿었던 첫 번째 히피 세대의 대안적 이상주의에 있다. 기계화되고 가속화된 세계에서 만듦의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 55벌의 옷에 깃든 자수와 뜨개질과 퀼팅 한 땀 한 땀이, 그 선언의 증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