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는 한계가 없고, 디자인에는 포화점이 없다.” 위대한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남긴 문장과 철학이 아로새겨진 페라가모 뮤지엄과 재단에서 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스테파니아 리치(Stefania Ricci). 커리어의 전환점이 된 1985년부터 이어진 오랜 연구와 경험, 그리고 존중을 통해 페라가모의 찬란한 유산을 계승하고, 헤리티지를 오늘의 언어로 치환하며, 입체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그와 나눈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STEFANIA RICCI
FERRAGAMO Director of Museo Ferragamo & Fondazione Ferragamo

MC 1985년, 피렌체 팔라초 스트로치(Palazzo Strozzi)에서 열린 살바토레 페라가모 첫 회고전을 기획한 인연이 2026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일 것 같아요. 하우스에 합류한 이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Stefania Ricci 저는 미술사를 전공했고, 박물관과 공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제 주된 업무는 컬렉션으로 소장한 예술 작품과 의복, 액세서리를 보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교육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었죠. 1985년에 페라가모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제 시야는 한층 넓어졌어요.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할까요?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 흥미로워요. 기업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브랜드를 알리는 전시를 기획하는 제 업무는 메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 즉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죠. 이는 마치 실험실에서 새로운 치료제나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연구와도 같아요. 패션은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더 나아지게 하니까요.
MC 당시 회고전을 준비하며 페라가모의 아카이브를 본격적으로 정비했다고 들었어요. 그 당시 가장 집중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SR 격동의 역사로 인해 과거의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한 다른 패션 하우스와 달리, 페라가모는 슈즈와 사진, 문서 등 풍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비록 체계적인 아카이브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그 유산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죠.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스스로 자신의 아카이브를 만든 최초의 인물이에요. 그는 자신의 커리어와 성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될 모든 것을 수집했어요. 당시 제 역할은 이 뛰어난 컬렉션을 더욱 확장하고, 박물관 같은 기준에 따라 정리해 언제 어디서든 제품 하나, 혹은 브랜드의 특정 시기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MC 1995년부터 페라가모 뮤지엄(Museo Ferragamo) 관장을, 2013년부터 페라가모 재단(Fondazione Ferragamo)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어요.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요?
SR 뮤지엄에서 제 역할은 아카이브에 보존된 자료를 연구하는 일에서 출발해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하우스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치환하죠. 우리의 전시는 뮤지엄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과 나라에서도 펼쳐져요. 이 과정에서 저는 생산, 법무,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부서의 동료들과 긴밀히 협업해 우리의 메시지가 브랜드의 정체성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도록 조율하죠. 페라가모 재단도 마찬가지예요. 2013년에 완다 페라가모(Wanda Ferragamo)와 가족의 지원으로 설립한 이곳은 순수하게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미술사와 아카이빙 전문가로 구성된 재단 팀은 아카이브를 보호하고, 매 시즌 새롭게 유입되는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 활동을 기획해요. 이는 연구 프로그램, 워크숍, 콘퍼런스, 출판물 등의 형태로 이어지며, 지식을 축적하는 동시에 공유하죠. 저는 이곳에서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구축한 가치들이 다음 세대에 정확하고 살아 있는 형태로 전달되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MC 1995년부터 뮤지엄은 창립자의 발자취를 넘어 디자인과 패션, 철학 등 다채로운 문화적 표현을 결합한 흥미로운 전시를 선보였어요. 그간 참여한 전시 중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전시는 무언가요?
SR 2014년에 진행한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전시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발 아치를 지지하는 슈즈 구조에 대한 페라가모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한 전시죠.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를 지나치게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치거나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어요. 뮤지엄을 찾는 관람객은 매우 다양해요. 전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시에 다양한 관객을 매료시키고, 놀라움을 선사해야 하죠. 특히 패션의 본질에는 언제나 ‘스펙터클’이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발의 균형에서 시작해 철학적 차원을 넘어 인류의 첫걸음, 춤, 곡예사의 세계까지 그 의미를 확장했어요. 로마제국 시대 조각의 발, 로댕의 ‘걷는 사람’ 연구작, 브루스 나우먼의 1968년 작품 등 세계적인 예술 작품까지 함께 큐레이션하고 소개했죠.
MC 지금 이 순간 페라가모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해 알려주세요.
SR 현재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생애를 조명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에요. 2023년, 하우스의 리브랜딩 시점에 맞춰 론칭한 이프로젝트는 한 인간의 성공과 희생, 그리고 그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조명하는 자리죠. 1985년 첫 전시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번 프로젝트는 그간 축적해온 연구와 전시의 성과를 집약한 자리이기도 해요. 영감의 원천과 다양한 소재, 발의 해부학, 3백68개의 특허, 장인정신과 혁신성, 매혹적인 컬러에 이르기까지 하우스를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죠.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큰 호응에 힘입어 기간을 올해 5월 10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어요. 이후에는 새로운 해외 큐레이터들과 협업해 다른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서로 다른 관점을 더해 하우스의 세계관을 한층 입체적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MC 전시마다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헤리티지를 해석해왔어요. 큐레이팅할 때 끝까지 놓지 않는 확고한 기준 혹은 원칙이 있나요?
SR 항상 브랜드의 역사에서 출발해 동시대적 주제로 그 의미를 확장하려고 노력해요. 패션 브랜드의 뮤지엄은 자기만족과 자화자찬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동시대 문화 담론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죠. 패션은 곧 문화이며, 우리 시대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태도니까요.
MC 오랜 시간 풍부한 유산을 내밀히 들여다보며 수많은 영감과 감동을 마주할 것 같아요.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로서, 페라가모가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는 그 특별한 힘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SR 40년 넘게 페라가모의 유산을 연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브랜드의 DNA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DNA가 변하지 않듯, 하우스에 깃든 본질 또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다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달리하며 진화할 뿐이에요. 페라가모에 녹아 있는 DNA. 이 특별한 장인정신과 가치를 경험한다면 페라가모의 매력이 더욱 선명히 보일 거라 확신해요.
MC 당신이 바라보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어떤 디자이너인가요? 장인, 혁신가,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나요?
SR 그는 진정한 크리에이터였다고 확신해요.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진심으로 신발을 사랑하고 그에 헌신한 인물.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한 미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간과 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했죠. 신발의 기능은 사람을 더 편안하게 하고, 자신을 더 잘 표현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그의 철학에 깊이 공감해요. 나아가 그가 남긴 “모든 여성을 공주로, 모든 공주를 여왕으로 만든다”라는 문장은 패션이 지닌 치유적,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죠.
MC 당신은 페라가모의 어떤 부분에 이토록 매료되어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우스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나요?
SR 제가 이곳에 오래 시간 머문 이유는 결국 사람입니다. 저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그의 가족이 지닌 인간적 매력과 진심에 깊이 감동했어요. 이곳에서 저는 숫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았죠. 그렇기에 제 브랜드라고 생각하며 일할 수 있었어요. 페라가모 뮤지엄은 제게 첫아이 같은 존재예요. 우리는 선례 없는 길을 개척하고 있죠.
MC 마지막으로,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페라가모의 헤리티지 피스를 통해, 혹은 메종의 메시지 가운데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SR “아름다움에는 한계가 없고, 디자인에는 포화점이 없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남긴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페라가모 뮤지엄과 재단을 통해 이어지고 있어요. 하우스를 관통하는 장인정신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상상력이 빚어낸 살아 있는 유산을 통해 독자들도 진정성 있는 페라가모의 오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1938
Rainbow Sandal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배우 주디 갈랜드를 위해 1938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디자인한 레인보우 샌들.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의 멀티컬러 웨지 힐은 하우스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섬세한 컬러 조화가 시선을 사로잡는 슈즈.

1940
The Cork Heel
지중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껍질로 만든 독창적인 코르크 힐과 메시 디테일이 휴양지의 여유로운 시간을 연상하게 한다. 1940년에 배우 로레타 영을 위해 디자인한 슈즈.

1947
Invisible Sandal
정교한 나일론 스트랩이 발등과 슬링백의 형태를 잡아주고, 레드 소가죽이 F-웨지 힐을 강렬하게 감싼 독창적 디자인의 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이 인비저블 샌들로 니먼 마커스 패션 어워드를 수상했다.

1955
Custom Boots for Sophia Loren
눈부신 골드 컬러, 정교한 엠보싱 디테일과 매끈한 스틸레토 힐의 조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쇼트 부츠. 르네상스 시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분위기의 이 슈즈는 배우 소피아 로렌을 위해 1955년에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제작한 아카이브 피스다.

1997
Custom Shoes for Drew Barrymore
1998년 드루 배리모어 주연의 영화 <에버 애프터(EverAfter: ACinderella Story)>에 등장한 신데렐라 슬리퍼. 르네상스 스타일의 사보(sabot) 슈즈로, 정교한 비즈 디테일과 투명한 힐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2026
S-Shaped Heel Mule
1920년대에 경의를 표하는 카프스킨 소재의 뮬. 장인의 손길로 하나하나 부착한 스트랩 디테일과 골드 컬러의 글래머러스한 힐의 조화가 강렬한 매력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