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W 파리 패션 위크가 제안하는 결정적 트렌드의 조각들.

지금 파리는 패션 위크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3월 2일 막을 올린 파리 패션 위크는 뉴욕과 런던, 밀란을 거쳐 이어진 2026 가을 겨울 시즌 여정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동시에 다음 시즌 트렌드를 가장 선명하게 압축해 보여주는 최종 장면이기도 하죠. 이번 시즌에는 총 67개의 실물 쇼와 31개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지고, 공식 캘린더 밖에서도 수많은 장외 이벤트가 도시 곳곳을 채우며 파리의 이름값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패션 위크가 반환점을 돈 지금, 주요 하우스들의 컬렉션에서 포착한 결정적인 트렌드 포인트를 살펴봅니다.

허리선에서 시작된 리듬을 만든 디올과 스텔라 매카트니, 지방시

파리 패션 위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디올(Dior) 쇼는 이번 시즌 주목할 디테일을 가장 먼저 꺼냈습니다. 바로 페블럼입니다. 허리 아래로 짧게 퍼지는 플레어 장식인 페블럼은 실루엣에 리듬을 더하고 허리선을 한층 또렷하게 잡아주는 요소입니다. 조너선 앤더슨은 연꽃이 가득한 정원으로 쇼장을 연출한 뒤 디올의 바 재킷을 새롭게 풀어내며 재킷 곳곳에 페블럼 디테일을 얹었습니다. 덕분에 단정한 테일러링 위로 가벼운 움직임이 살아났죠.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역시 잘록한 허리선과 재킷 밑단의 퍼 트리밍, 우아하게 퍼지는 페블럼 장식으로 한층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완성했습니다. 사라 버튼이 이끄는 지방시(Givenchy)에서도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허리선을 강조한 테일러링과 레이스를 풍성하게 활용한 드레스 사이로 각을 살린 페블럼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번 시즌의 방향을 예고합니다.

알라이아, 스텔라 매카트니의 HIP VOLUME PLAY

페플럼이 재킷 위에서 허리선을 또렷하게 세웠다면, 다음 변화는 허리 아래에서 시작합니다. 허리를 바짝 조이는 동시에 양옆 힙 볼륨을 입체적으로 확장해 옆선을 강조한 실루엣이 런웨이에서 여러 번 등장했죠. 알라이아(ALAÏA)는 구조적인 보디스와 벨벳 드레스를 결합해 힙 라인을 양옆으로 크게 부풀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또한 허리 아래에서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볼륨을 더해 신체의 비례를 극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런 실루엣은 밑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일반적인 플레어와는 차이가 납니다. 오히려 돌출된 힙 라인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에 가깝죠. 18세기 복식에서 힙의 너비를 확장하던 패니어(Pannier)를 연상시키지만, 지금의 해석은 한층 날렵하고 조각적입니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생 로랑과 릭 오웬스 룩

몸을 크게 감싸는 옷에는 묘한 안도감이 있습니다. 생 로랑(Saint Laurent)은 르 스모킹 수트의 권위를 다시 꺼내 들면서도 거대한 퍼 코트와 퍼 트리밍 코트로 볼륨감 있는 아우터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수트와 퍼 아우터, 시어한 레이스 드레스가 맞물린 컬렉션은 서로 상반된 요소가 부딪히고 어우러지는 ‘정반합’의 밸런스를 보여줬죠. 릭 오웬스(Rick Owens)쇼에서도 벌키한 퍼 아우터가 단번에 시선을 끌었습니다. 바닥을 스치는 퍼 코트와 과장된 실루엣이 맞물리며 몸을 감싸는 보호막 같은 이미지를 또렷하게 완성했고, 결국 이런 벌키한 볼륨은 단지 부피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감싸고 지키는 보호막처럼 기능합니다. 

클로에와 아크네 스튜디오가 이끄는 쳌, 쳌, 쳌 포인트

체크는 매 시즌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지만 패션 하우스는 매번 다른 온도로 체크 패턴을 풀어냅니다. 끌로에는 포크 보헤미안 무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체크를 활용했습니다. 시어한 소재와 러플, 흐르는 스커트 위에 얹힌 체크는 가볍게 흩어지듯 움직였고 포크풍 분위기와 맞물리며 패턴 특유의 무게감을 한층 부드럽게 풀어냈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는 재킷과 셔츠, 스커트에 서로 다른 체크를 겹치고 비율에도 변주를 주며 익숙한 타탄에 새로운 리듬을 더했습니다. 반면 라반(Rabanne)은 1940년대풍 드레스에 그런지 기운이 감도는 체크와 오버사이즈 플래드 재킷을 더해 보다 클래식하면서도 존재감이 분명한 체크를 선보였습니다. 패턴 자체가 룩의 포인트 역할을 했죠. 이렇듯 체크의 변주는 여전히 유효하고 또 무궁무진합니다.

드리스 반 노튼, 스키아파렐리로 알아보는 아트가 된 텍스타일

옷의 인상을 좌우한 건 실루엣만이 아닙니다. 시선을 오래 붙잡은 건 소재와 장식이 만든 풍부한 텍스처였죠.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패턴감이 또렷한 자카드 아우터로 직조의 존재감을 끌어올렸고, 질감이 다른 니트웨어로 텍스타일의 스펙트럼을 확장했습니다.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는 트롱프뢰유 자카드와 착시 효과를 주는 프린트, 액체처럼 흐르는 플리세 질감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렸습니다. 발망은 클로케 자카드와 필 쿠페 자카드, 촘촘한 자수와 구슬 장식, 애니멀 모티프를 앞세워 소재의 존재감을 강조했습니다.

마침표와 이정표

어떤 하우스는 한 시대를 마무리했고, 어떤 하우스는 다음 장의 첫 문장을 적었습니다. 먼저 알라이아(ALAÏA)의 피터 뮐리에는 마지막 컬렉션에서 그동안 집요하게 다듬어온 조각적 실루엣과 몸의 곡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5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쇼장에는 라프 시몬스와 마티유 블라지를 비롯한 동료 디자이너들도 참석해 그의 마침표를 함께 기념했죠. 피터 뮐리에는 떠나지만 알라이아에 남긴 그의 미학은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또한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습니다. 창립자가 물러난 뒤 줄리안 클라우스너 체제 아래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하우스는 아카이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층 자유로운 감각과 새로운 균형을 드러냈습니다.

발망(Balmain)은 올리비에 루스탱 뒤를 이어 안토닌 트롱과 함께 메종 고유의 DNA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과시적인 화려함 대신 자카드와 드레이프, 구조적인 재단에 집중하며 하우스의 결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패션 하우스가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만합니다.

3월 10일 막을 내리는 파리 패션 위크도 이제 클라이맥스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Chanel)을 비롯해 루이 비통(Louis Vuitton), 미우미우(Miu Miu)까지 2026 F/W 트렌드의 방향을 가를 패션 하우스들의 쇼가 남아 있으니 끝까지 지켜볼 이유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