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컷아웃과 쨍한 네온 컬러까지. SNS 피드의 스크롤을 내리다 잠시 손가락을 멈추게 만드는 영국 브랜드 ‘니하이(NIIHAI)’를 아시나요? 요즘 젠지들이 열광하는 ‘니하이’는 벨라 하디드나 두아 리파 같은 글로벌 패션 아이콘들은 이미 섭렵한 영국 패션 브랜드입니다. 특유의 과감한 컷아웃 디테일과 선명한 컬러감 속에 담긴 ‘여성의 독립적인 태도’라는 메시지가 참 매력적인데요. 지난 4월, 서울에서도 첫 팝업을 열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니하이. 브랜드의 디렉터 로지 윌리엄스(Rosie Williams)를 만나 니하이만의 대담한 미학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니하이의 첫 시작이 궁금해요.

사실 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서 무작정 런던으로 이주했죠. 여느 작은 브랜드들이 그렇듯, 제 방 한구석에서 조금씩 작업을 시작했어요. 당시 모델,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친구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 친구들이 초기 몇 달 동안 정말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죠.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나갔어요.

‘NIIHAI(Knee High)’라는 이름,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니하이 부츠에서 따온 게 맞나요?

맞아요! 대학 시절 친구와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페이지 이름에서 따왔어요. 그게 현재 니하이의 공식 계정이 됐고요. 직접 촬영한 화보를 올리던 계정이었는데, 당시 친구와 제가 둘 다 ‘니하이 부츠’를 신고 있어서 장난스럽게 지은 이름이었거든요. 브랜드를 론칭할 때 이미 너무 익숙해진 이름이라 자연스럽게 결정하게 됐는데, 돌이켜보면 이 이름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된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부츠가 저희의 초기 베스트셀러이자 브랜드를 알린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으니까요.

니하이의 시그니처인 독특한 컷아웃과 주체적인 실루엣, 쨍한 컬러감은 당당한 여성의 자신감으로 느껴져요. 니하이가 정의하는 ‘이 시대의 강인하고 현대적인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니하이가 추구하는 철학들이 곧 제가 생각하는 여성상이에요. 당당하고, 세계로의 넓은 시각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또는 입는 여성 말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강인하고 현대적인 여성은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이죠.

니하이가 시작된 2019년 런던 패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쨍한 네온 컬러가 지배적이었잖아요. 그때의 감성이 지금까지도 브랜드 안에서 이어지고 있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니하이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피스 딱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지금 마침 제가 입고 있어서 바로 떠오른 걸 수도 있지만, ‘로지 핑크(Rosie Pink) 컬러의 커버 트랙수트’를 꼽고 싶어요. 편안하면서도 만듦새가 정말 훌륭하거든요. 원단과 워싱, 그리고 니하이만의 컬러감을 잡는 데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아주 밝고 즐거운 에너지를 주는 옷이죠.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멋지게 드레스업하기에도 완벽해요. 편안한 실루엣 속에서도 충분히 나만의 개성을 갖는 것, 그것이 니하이를 가장 잘 정의한다고 생각합니다.

Y2K 무드와 테크니컬한 요소가 공존하는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컬렉션을 기획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특정 시대나 아이콘이 있나요?

우리는 캡슐 컬렉션을 하나의 ‘작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디자인해요. 니하이의 핵심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각 캡슐마다 서로 다른 스토리로 시작하죠. 거창한 것보다는 팀원들이 지금 당장 입고 싶은 것, 인터넷 서핑, 제가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패션 블로그들, 아카이브 런웨이, 그리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흔한 풍경들까지 모든 곳에서 소스를 얻어요. 이 모든 요소를 끌어모아 ‘니하이다운’ 무언가로 빚어내는 과정이 정말 즐겁습니다.

최근 새로운 캡슐 컬렉션인 ‘Capsule 022, Lejos del mar(바다로부터 먼 곳)’을 선보였잖아요. 이번 컬렉션에는 어떤 ‘작은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스페인적인 뿌리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이에요. 이름의 뜻처럼 ‘여름에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감정’을 담았죠.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그리운 바다는 오직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일상 말이에요. 이번 컬렉션은 그동안 가장 사랑받아온 스타일들을 새로운 원단과 컬러로 재해석한 리에디션 제품들과, 처음으로 선보이는 완전히 새로운 실루엣들을 함께 담았습니다. 룩북은 말라가에서 촬영했고, 더 입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마드리드에서 ‘Lejos del mar’라는 영상 화보도 제작했어요. 카르멘과 타니아라는 두 친구가 도시 외곽의 시장을 일주일 동안 걸어 다니는 모습을 마치 조각난 기억 속을 떠도는 것처럼 연출했으니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영상 화보의 배경이 된 마드리드 이야기를 하니, 투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브리즈번, 멜버른, 도쿄에 이어 서울까지 세계적인 도시에서 팝업 투어를 돌고 있잖아요. 오프라인 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오프라인에서 직접 옷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갈증이 늘 있었어요. 니하이는 온라인 기반 브랜드라 화보로 멋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도 즐겁지만, 화면만으로는 옷의 진가를 다 담아내기 어렵거든요. 옷을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는 것은 차이가 커서, 실제로 사람들이 디테일에 놀라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무엇보다 저희 브랜드를 좋아해 주는 이들을 직접 만나는 게 저희에겐 큰 의미였어요. 그들과 대면하여 소통하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브랜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죠.

한국 팝업에서 직접 만난 한국 소비자들만의 특징이 있었나요?

한국 여성들의 쿨한 에너지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서울 팝업에 온 분들 모두 정말 다정했고요. 그들이 우리 옷을 유니크하게 스타일링하는 방식이나 선호하는 피스들을 지켜보는 게 제 디자인 작업에도 실질적인 영감이 돼요.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들에 반응하는지 아는 건 정말 중요한 데이터니까요. 팝업에서 만난 한국 여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니하이를 정말 자유롭게 즐기고 있더군요.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오직 스타일링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우리가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은 아시아에서의 첫 팝업이었는데, 최고였어요! 서울은 반드시 다시 찾아오고 싶은 도시입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니하이를 입는 사람들에게선 묘한 공통점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가 느끼기에 니하이를 입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유머와 농담을 즐겨요. 우리 옷은 정해진 답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일링하며 즐기도록 만들어졌거든요. 저희가 예상치 못한 기발한 방식으로 믹스매치하는 걸 보면 정말 흥미로워요. 그 지점이 서로를 연결하는 하나의 단단한 실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니하이가 전개하는 주얼리 라인도 정말 궁금한데요. 향후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나 브랜드, 혹은 전혀 다른 산업 분야가 있을까요?

멋진 슈즈 협업은 꼭 해보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음식이나 음료 브랜드처럼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와의 협업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아직 거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경험은 없지만, 현재 몇몇 흥미로운 곳들과 논의 중이라 아주 설레는 단계예요. 다음 스텝을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패션계에서 ‘니하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어떤 형용사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니하이를 정의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대조(Contrast)예요. 매니시함과 페미닌함, 삭막한 도시와 지중해의 해변처럼 상반된 무드를 넘나들며 조화시키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딱 한 단어만 골라야 한다면, 저는 니하이가 ‘장난스러운(Playful)’ 브랜드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약간의 재미와 아이러니가 섞여 있거든요. 사람들이 ‘니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유쾌함을 가장 먼저 떠올려 주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