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파리 오뜨 꾸뛰르 위크 기간에 함께 열리는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은 브랜드의 비전과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입니다.
  •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은 전 세계 주요 미디어와 스타일리스트가 모이는 기회를 활용해 최신 컬렉션을 직접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최근 하이 주얼리 시장의 성장과 패션 하우스들의 진입으로 프레젠테이션은 오뜨 꾸뛰르 기간 중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필수 일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년 7월이면 전 세계 패션계의 시선은 파리로 향합니다. 오뜨 꾸뛰르 위크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 파리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무대가 펼쳐집니다. 바로 하이 주얼리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입니다. 패션과 주얼리는 다른 분야인데, 왜 하필 같은 시기에 움직이는 걸까요?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오뜨 꾸뛰르와 하이 주얼리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뜨 꾸뛰르는 프랑스 법으로 보호받는 최고급 맞춤 의상을 의미합니다. 최고 수준의 장인 기술과 수백 시간의 수작업, 그리고 각각 메종의 창의력이 집약된 작품이죠. 하이 주얼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뛰어난 장인 기술과 진귀한 보석을 통해 메종이 지금 보여줄 수 있는 미학과 기술력의 정수를 담아냅니다. 자동차 브랜드가 컨셉트카, 시계 브랜드가 컨셉트 워치를 통해 미래를 기술을 제안하듯, 하이 주얼리 역시 메종의 비전과 예술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뜨 꾸뛰르 위크는 하이 주얼리 메종에게도 중요한 무대가 됩니다.

1년 동안 파리에서는 여러 차례 패션위크가 열리지만, 레디투웨어 쇼와 오뜨 꾸뛰르 위크는 성격부터 다릅니다. 레디투웨어 쇼가 다음 시즌의 트렌드와 시장의 흐름을 읽는 자리라면, 오뜨 꾸뛰르는 메종의 DNA를 장인 정신과 창의력을 통해 깊이 있게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컬렉션은 실제 고객의 체형과 취향에 맞춰 새롭게 제작되고, 이를 주문할 고객과 그들의 관계자들이 파리를 찾습니다. 언론들 역시 메종이 어떤 기술과 창의성으로 브랜드의 비전을 구현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를 찾습니다.

하이 주얼리 메종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바로 이들입니다. 컬렉션을 실제로 구입할 고객, 메종의 철학과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전달할 에디터, 그리고 훗날 화보와 레드카펫에서 그 작품을 다시 세상에 소개할 스타일리스트까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전달하고 싶은 가치도 같기 때문에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은 자연스럽게 오뜨 꾸뛰르 위크와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공개되는 작품들이 반드시 모두 신제품인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메종은 이미 상반기에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공식 론칭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초대되는 기자와 스타일리스트는 극히 제한적이죠. 반면 오뜨 꾸뛰르 위크에는 전 세계 주요 미디어와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모입니다. 가장 최신 컬렉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직접 보여주고, 하반기 기사와 화보, 레드카펫으로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의 진짜 목적입니다.

저 역시 시계, 주얼리 브랜드에서 일하며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느꼈습니다. 주얼리는 실물을 보기 전과 본 후, 착용 해보기 전과 후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는 몇 안 되는 분야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실제 보석이 빛을 머금는 순간의 압도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색과 투명도, 움직일 때마다 살아나는 광채, 그리고 완성도 높은 착용감은 반드시 직접보고 착용해 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직접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보고 온 해와 그렇지 않았던 해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직접 보고 온 컬렉션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고, 메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이어지는 PR 활동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에디터분들께 컬렉션을 소개할 때도, 스타일리스트분들과 레드카펫 스타일링을 논의할 때도 제 머릿속에는 언제나 실물에서 받았던 감동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매력과 메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훨씬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제가 브랜드에 몸담고 있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한 일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뜨 꾸뛰르 위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패션이었고,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은 그 사이에서 ‘한 번만 들러 달라’고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 행사에 가까웠습니다.

“패션쇼로 많이 바쁘시겠지만 잠깐이라도 들러 주세요.”

“케이터링이 대단히 맛있다고 하네요. 샴페인으로 목이라도 축이고 가세요.”

조금은 서글펐지만 이런 말을 건네며 어떻게든 프레젠테이션 현장으로 모시고자 애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브랜드 담당자가 직접 파리에 와서 에디터를 맞이하는 메종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현장에 사람이 없으니 프레젠테이션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도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잠깐 둘러보고 가는 일정”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하이 주얼리 시장은 눈에 띄게 성장했고, 메종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하이 주얼리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같은 전통적인 하이 주얼리 메종은 물론, 신선한 감각을 앞세워 새로운 도전에 나선 메종들까지 존재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샤넬, 루이 비통, 디올과 같은 패션 하우스들 역시 하이 주얼리를 브랜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시키며 이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일정을 하루 이틀 더 늘려서라도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을 함께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 거죠. 메종들도 그 변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각국의 브랜드 담당자들이 직접 파리를 찾아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를 맞이하고,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컬렉션의 메시지를 보다 깊이 전달하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은 더 이상 ‘시간이 되면 들르는 행사’가 아니라, 오뜨 꾸뛰르 위크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또 하나의 목적이 된 셈입니다. 저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상반기 우리 브랜드의 하이 주얼리 론칭 이벤트보다, 오히려 오뜨 꾸뛰르 위크 기간 방돔 광장을 돌며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메종들의 하이 주얼리를 한자리에서 마주하는 일에 더 설레지 않았을까 하고요.

올해도 그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비록 파리에 있지는 못했지만, 각 메종이 공개한 컬렉션과 메이킹 영상, 디테일 컷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저만의 ‘방돔 광장 산책’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머물러 바라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마음을 빼앗긴 다섯 점을 골라봤습니다.

메종의 규모나 메인 스톤의 가치, 작품의 시세는 이번 순위에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하이 주얼리를 좋아했고, 메종에서 그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언젠가 꼭 실물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던 작품들입니다. 무엇이 저를 그렇게 오래 붙잡았는지, 제가 오래 시선을 빼앗겼던 이유도 함께 적어봤습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여러분도 같은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 같습니다.


▶ 부쉐론 – 까뜨르 블랑슈 2026 Human Being 컬렉션, 플라워 네크리스

부쉐론은 시류를 좇기보다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하이 주얼리를 만들어내는 메종입니다. 그래서 제가 현업에 있을 때도 늘 가장 흥미롭게 지켜봤던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더 크고 희귀한 스톤을 찾아 경쟁하기보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을 하이 주얼리로 증명해 왔습니다. 몇 년 전에는 1980년대의 강렬한 컬러와 에너지를 평면적인 그래픽처럼 풀어냈고, 사막의 곡선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라탄을 하이 주얼리에 접목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번 까르뜨 블랑슈 2026 ‘Human Being’ 컬렉션 역시 그런 부쉐론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컬렉션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규모입니다. 올해 컬렉션은 하나의 형태를 다섯 가지 방식으로 변주한 네크리스와 링 세트, 총 10점이 전부입니다. 연간 수백점의 하이 주얼리를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제작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대형 메종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오직 다섯 개의 이야기만으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자신감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최소 1,500시간에서 최대 3,700시간에 이르는 작업이 투입됐지만, 정작 메인 스톤으로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전통적인 프레셔스 스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락 크리스털, 로즈 쿼츠, 모거나이트, 오닉스, 스모키 쿼츠와 같은 하이 주얼리에서는 다소 낯선 소재들에 글립틱 아트와 마이크로 미니어처 페인팅, 초정밀 레이저와 같은 장인 기술을 더해 ‘부쉐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작품은 단연 ‘플라워’ 세트였습니다. 몸 전체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로즈 쿼츠 한 점 한 점에 마이크로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꽃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3,290시간이라는 제작 시간도 놀랍지만, 저를 감동시킨 것은 그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값비싼 보석으로 하이 주얼리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로즈 쿼츠라는 비교적 친숙한 스톤을 그 어떤 진귀한 프레셔스 스톤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쉐론은 올해도 다시 한번, 하이 주얼리의 가치는 보석의 가격이 아니라 메종의 상상력과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가장 우아하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메이킹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난 뒤에는 작품보다 그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 메시카 – Terres de Contrastes 컬렉션, 르 오카방고 블루 (Le Okavango Bleu) 네크리스

컬러 스톤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저에게도 컬러 다이아몬드는 여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천연 컬러 다이아몬드는 전체 다이아몬드 산출량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할 만큼 희소하고, 그중에서도 블루 다이아몬드는 가장 만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까르띠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제외하면 5캐럿이 넘는 컬러 다이아몬드를 실제로 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입사 당시 수십억 원대였던 작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퇴사할 무렵에는 몇 배의 가격으로 다시 제 눈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컬러 다이아몬드의 세계는 제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그것도 20캐럿이 넘는 천연 팬시 딥 블루 다이아몬드라는 설명만으로도 이 작품은 제게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다가왔습니다.

메시카는 이 다이아몬드를 그들의 디자인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보츠와나의 자연이 만들어낸 ‘오카방고 블루’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디자인은 30번이 넘는 수정을 거쳐 오직 블루 다이아몬드의 색과 존재감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도록 완성됐습니다. 주얼리가 보석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석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난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꼭 실물로 만나보고 싶습니다. 사진으로도 압도적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깊은 푸른빛을 품고 있을까요. 수십억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이 제 눈앞에서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올지, 언젠가는 꼭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 부첼라티 – 세레니시마(Serenissima) 브레이슬릿

부첼라티의 새 하이 주얼리 컬렉션 ‘세레니시마’는 한때 베네치아 공화국을 일컫던 별칭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예술과 무역, 장인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피웠던 시대의 베네치아를 하이 주얼리로 풀어낸 컬렉션이죠. 그 중심에는 부라노섬의 레이스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부첼라티에 영감을 주어온 이 섬의 전통 레이스를 금속이라는 전혀 다른 소재로 다시 해석해, 직물이 가진 섬세함과 입체감을 주얼리로 표현했습니다.

부첼라티는 적어도 제게 ‘여리여리한 여성성’을 이야기하는 메종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존재감 있는 서구형 미녀가 가장 잘 소화할 것 같은 브랜드였죠. 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늘 동경만 했을 뿐, 선뜻 시도해 볼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공개된 세레니시마 컬렉션을 보며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특히 제가 고른 이 브레이슬릿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작품이었습니다. 분명 화이트 골드인데 천처럼 보였고, 단단한 금속인데도 손목 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것 같았습니다. 오픈워크 사이로 피부가 함께 드러나면서 어느 순간 주얼리를 보고 있는 건지, 레이스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죠. 레이스를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보니 여리여리한 이미지보다 당당하고 존재감 있는 여성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레이스라는 가장 섬세한 소재로도 부첼라티다운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오래 붙잡은 것은 다이아몬드보다 그 사이의 빈 공간이었습니다. 금속을 덜어낸 자리로 빛이 드나들고, 그 여백 덕분에 단단한 화이트 골드는 놀라울 만큼 가볍게 떠오릅니다. 아름다움은 무언가를 더할수록 완성되는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비워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를 보여주더군요. 하이 주얼리의 가치는 거대한 스톤 하나가 아니라, 그 빈 공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장인이 기꺼이 들인 시간과 집요함에도 있다는 사실을 세레니시마 브레이슬릿은 누구보다 우아하게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 다미아니 – Arte Maestra 컬렉션, 임페투오사(Impetuosa) 네크리스

명화를 하이 주얼리의 언어로 재해석한 다미아니의 아르떼 마에스트라 컬렉션은 처음부터 무척 기대가 컸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거장, 정선의 <추일한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관심이 갔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저에게도,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그림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은 작품은 의외로 일본을 대표하는 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명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였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명화라 자칫 평범한 오마주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다미아니는 그림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다이아몬드와 파라이바 투어멀린, 그리고 여러 톤의 블루 사파이어를 하나하나 세팅해 거대한 파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세필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잘게 부서지는 파도의 결을 입체적으로 완성했고, 목선을 따라 굽이치는 곡선에서는 금방이라도 밀려올 듯한 거센 물살의 운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저를 감동시킨 것은 원작을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종이 위에 새겨진 파도의 힘과 리듬을 보석이라는 전혀 다른 언어로 옮겼는데도, 그 압도적인 에너지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꼭 실물로 만나보고 싶습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실물은 그 안에 담긴 에너지까지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와 파라이바 투어멀린, 블루 사파이어 위로 빛이 흐르는 순간, 호쿠사이가 그려낸 파도의 기세가 어떻게 살아나는지 제 눈으로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 반클리프 아펠 – Fascinating Egypt 컬렉션, 뮈즈 에테르넬(Muse Éternelle) 클립

고대 이집트는 주얼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찬란한 문명입니다. 세계 최초로 에메랄드가 채굴된 지역이었고, 터콰이즈와 카넬리언, 라피스 라줄리 같은 보석을 권력과 영원,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연꽃과 스카라브, 태양 같은 상징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건네고 있죠.

그런데 올해 반클리프 아펠이 보여준 이집트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동안 요정과 발레리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던 메종은 최근 <보물섬>에 이어 이번에는 고대 이집트라는 거대한 세계를 무대로 선택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소재가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한눈에 ‘반클리프 아펠답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반클리프 아펠은 고고학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이집트를 다시 상상했습니다. 장엄한 문명을 동화처럼 풀어내고, 웅장한 상징 속에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유머와 따뜻함을 녹여냈죠. 저는 바로 그 스토리텔링에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집트를 공부하고 쓴 한 편의 동화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뮈즈 에테르넬 클립입니다. 반클리프 아펠이 지금까지 무용수와 연인, 소설 속 주인공들을 사랑스럽게 표현해 왔다면, 이번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 그 자체인 클레오파트라를 작은 클립 하나에 담아냈습니다. 앙증맞은 실루엣에 왕관과 장신구, 왕홀과 앙크까지 모두 갖춘 모습은 너무나 직관적이라 오히려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습니다. 20대 때 할로윈 파티에서 클레오파트라 분장을 했을 만큼 그녀를 좋아했던 저라서 더 욕심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위와는 상관없이, 이번에 선택한 Best 5 컬렉션에서 단 한 점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 클립을 고를 것 같습니다.
이제껏 이집트를 떠올리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불가리가 먼저 생각났는데, 이제는 반클리프 아펠도 함께 떠오를 것만 같네요.


다섯 작품을 소개하고 나니 오히려 실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진만으로도 이렇게 오래 시선을 붙잡는 작품이라면, 실제로 마주했을 때는 얼마나 큰 감동을 줄까요? 이제는 저도 하이 주얼리 메종들이 왜 매년 7월이면 그토록 바쁘게 파리로 향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년 7월에도 저는 또 다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겠죠.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을 사진이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Q&A
AI 마리봇의 Q&A
A
두 분야 모두 최고 수준의 장인 기술, 수작업, 그리고 창의력을 집약해 메종의 미학과 비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A
컬렉션을 실제 구매할 핵심 고객, 가치를 전달할 에디터, 화보와 레드카펫을 주도할 스타일리스트 등 만나고 싶은 대상이 오뜨 꾸뛰르 기간에 파리에 모두 모이기 때문입니다.
A
보석이 빛을 머금는 순간의 압도적인 광채, 색, 투명도, 움직임에 따른 변화와 착용감은 사진에 담기지 않으며 직접 착용해 봐야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하이 주얼리 시장의 눈에 띄는 성장과 함께 전통 메종의 투자 확대, 그리고 샤넬, 루이 비통, 디올 같은 패션 하우스들의 적극적인 진입이 흐름을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