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마리봇의 요점 정리
  • 어린 시절부터 공주와 케이트 미들턴을 동경하던 필자는 그녀의 약혼반지를 계기로 사파이어에 대한 오랜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 보석 공부 중 사파이어 산지인 스리랑카 박람회에 동행하여 취향에 맞는 3캐럿대 로열 블루 쿠션 컷 사파이어 나석을 직접 구매하였습니다.
  •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와는 다른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반지를 완성하며 혈통 대신 취향과 흥정으로 스스로를 아끼는 삶을 만족해합니다.
AI generated image by Christina Park.

어릴 적 제 장래희망은 공주님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빌드업을 하나 궁금하실 수 있겠지만, 곧 저와 사파이어의 운명적인 만남에 무릎을 탁 치실 테니 조금만 더 들어봐 주세요.

동화 속 공주님은 항상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공주란 그림 같은 성에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쓴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마치 한 폭의 초상화 같은 그 자태가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 저는 태생 자체가 공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력해도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인생 첫 좌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찌감치 공주의 꿈은 좌초되었지만 이상하게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 혼자 살던 스튜디오 아파트는 침구부터 가전까지 디즈니 스토어에서 디즈니 프린세스를 테마로 꾸미고 핑크색으로 페인트칠까지 해놓고 살았고, 이메일은 물론 프리챌, 싸이월드, 페이스북까지 만드는 계정마다 어김없이 ‘princess’를 넣었습니다. 온라인 세상에서만큼은 누구도 제 혈통을 문제 삼지 않았으니까요. 대학 졸업 후 패션 매거진 인턴 계약 종료를 앞두고도 그 이메일 주소로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디에서도 면접 요청이 오지 않아 진지하게 선배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 상담까지 했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메일 주소를 좀 진지한 것으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던 그 선배와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며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면 당시 편집장님은 저 이메일 주소로 받은 이력서를 보시고도 저를 뽑아주신 게 되네요. ‘princess’가 들어간 이메일 주소를 차치하고도 뽑고 싶을 만큼 저는 뛰어난 인재였나 봅니다. 그동안 너무 겸손하게 살아온 건 아닌지 새삼 반성하게 되네요.


그러던 제 앞에 어느 날 케이트 미들턴이라는 현실의 공주님이 등장합니다. 당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윌리엄 왕자의 연인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던 그녀는 2011년 그와 결혼해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었고, 지금은 웨일스 왕세자비(Princess of Wales)가 되었죠.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고도 제가 그토록 바라던 ‘프린세스’의 꿈을 현실에서 이룬 전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떤 헐리웃 배우보다도 제 스타일이었던 그녀를 외모로도 기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그녀를 동경하는 것뿐이었습니다.

2011년 세기의 로열 웨딩을 TV 중계로 지켜보며 저는 케이트 미들턴이라는 사람에게 더 깊이 빠져버렸습니다. 내가 저 공주님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면, 뭐라도 하나 비슷해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서른도 넘어서 그런 생각을 다 했답니다. 그래서 인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만큼은 그녀를 따라 해보고 싶었어요. 수년 후 제가 결혼할 때도 케이트 미들턴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겠다고 열심히 찾아다녔죠. 비슷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피팅룸 커튼 밖으로 나온 저를 한참 바라보던 엄마가 떫떠름한 표정으로 “부잣집 유모 같다”고 하시는 바람에 그 꿈 역시 접었지만, 그렇다고 제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공주로 가는 길은 저에겐 참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주얼리가 떠올랐습니다. 옷과 달리 체형을 크게 타지도 않고, 어쩌면 제가 따라 해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녀의 약혼반지, 그 유명한 사파이어 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껏 이 긴 빌드업을 해왔네요.

바로 저거예요. 저 반지라면 저도 많은 노력을 하면 가질 수 있잖아요! 저게 있으면 저도 무언가 그녀와 닮은 부분이 생기는 거잖아요! 하지만 정작 제 결혼반지로 사파이어를 선택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컬러 스톤을 예물로 고르는 건 제법 긴 설득이 필요한 일이었고,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내며 결혼 준비만으로도 벅찼던 저는 얌전히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을 택했죠.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요.

결혼 후에도 케이트 미들턴의 사파이어는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저는 사파이어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친정에 제게 물려주실 만한 사파이어가 없는지 미어캣처럼 기웃거리는 것이었죠. 그러다 외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물려진, 컬러도 근사하고 크기도 큼직한 사파이어 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찾았다! …싶었는데 그것은 탄생석이 사파이어인 9월생 언니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엄마의 단호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보석 회사에서 일하며 남들보다 일찍 보석에 눈을 뜨고, 그래서 그동안 엄마의 금고를 심심치 않게 털어온 저는 이미 더 좋은 것들을 챙겨간 이후라 사실 불만을 표할 처지는 안됐습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데이비드 웹 칵테일 링 AI generated image by Christina Park.


그래도 얼마 후 제게도 사파이어 반지가 하나 주어졌습니다. 외할머니가 70년대에 뉴욕의 데이비드 웹(David Webb)에서 구입하신 칵테일 링이었어요. 엄마도 언니도 선뜻 끼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디자인이 오히려 제 취향에는 꼭 맞았습니다. 스톤 하나하나가 아주 큰 반지는 아니었지만 대담하고 화려했고, 무엇보다 드디어 제게도 첫 사파이어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씩 꺼내 낄 만큼 좋아하는 반지예요.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참 그렇습니다. 사파이어가 없을 때는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더니, 막상 하나가 생겨도 손가락을 큼직하게 덮는 사파이어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컬러도, 중량도, 컷도 모두 제 마음에 드는 것으로요.

그렇게 막연히 ‘언젠가는’ 하고 있던 차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파이어의 주요 산지 중 하나인 스리랑카에 직접 가게 된 겁니다. 마침 퇴사 후 보석에 더 큰 관심이 생겨 공부하던 시기였습니다. 제 보석 멘토이자 보석학과 교수님께서 스리랑카에서 열리는 젬스톤 박람회(Facets Sri Lanka)에 초청받아 방문하시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저에게도 그 여정에 동행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보석을 공부하던 사람이 세계적인 사파이어 산지에, 그것도 오랜 시간 보석을 연구해온 전문가와 함께 가게 됐으니 이보다 좋은 현장학습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하필 그곳이 스리랑카였습니다. 케이트 미들턴의 그 유명한 약혼반지 역시 스리랑카산 사파이어였거든요. 이쯤 되니 저는 슬슬 이것을 운명이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스리랑카의 박람회에는 10여 년간 하드 럭셔리 PR을 하며 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사파이어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늘 완성된 하이주얼리로만 보던 스톤들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석으로 셀 수도 없이 놓여 있으니 황홀했어요. 맑은 콘플라워 컬러부터 제가 좋아하는 쨍한 로열 블루, 핑크, 옐로, 오렌지, 그린까지. 컷팅도 클래식한 오벌과 쿠션부터 페어, 마키즈, 하트까지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스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이건 반지, 이건 이어링…’ 머릿속으로는 이미 혼자 주얼리 컬렉션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가격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럭셔리 메종의 완성된 주얼리로만 보아오던 가격과는 꽤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 아주 위험한 생각 하나가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사면 되겠는데?’

그 순간부터 공주고 케이트 미들턴이고 잠시 잊었습니다. 수많은 나석들을 앞에 둔채 누구보다 현실적인 구매자가 되어 가격을 묻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다시 보고, 내려놓고, 또 보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한 딜러의 부스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이어링용으로 나란히 놓인 쌍둥이처럼 똑같은 두 점의 3캐럿대 쿠션 컷 사파이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벨벳처럼 짙고 묵직한 로열 블루. 그 중에서도 미세하게 제 눈에 더 들어오는 한 점이 있었어요. 3.14캐럿의 쿠션 컷 로열 블루 사파이어. 미세한 열처리(H)를 한 스톤이었지만 저는 투자할 사파이어, 언젠가 되팔 사파이어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애정하며 오래오래 낄 반지면 되니, 결국 제 눈에 예쁜 것이 제일 중요했어요.

생각해보니 이것도 좀 웃깁니다. 스리랑카까지 온 것도 모자라 그 많은 색의 사파이어를 앞에 펼쳐놓고 결국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와 같은 로열 블루 앞에서 멈춰 선 겁니다. 역시 운명인가 봐. 이 정도 자기합리화도 40년쯤 하면 신념이 됩니다.

문제는 딜러가 그 두 스톤을 이어링용 한 쌍으로 팔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저는 두 개까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고, 그만큼의 예산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결국 장화 신은 고양이 눈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잔뜩 보내며 제가 조금 더 좋아했던 그 한 점만 판매해달라고 매달렸고, 남대문과 동대문을 오가며 오랜 세월 단련해온 가격 네고 스킬 역시 국경을 넘어 제 몫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보석 앞에서는 유창한 언어보다 계산기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이렇게 또 배웁니다.

가격을 두고는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애초에 사파이어를 사러 스리랑카까지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전문가와 함께 충분히 스톤을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 싶어 용기를 냈고, 몇 번의 흥정 끝에 결국 그 사파이어를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려받은 것도, 누군가 골라준 것도 아닌 제가 직접 고른, 제 취향을 100% 저격하는 사파이어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다음부터입니다. 케이트 미들턴의 사파이어는 오벌 컷인데 제가 고른 것은 쿠션 컷이었거든요. 심지어 같은 조건의 오벌 컷이 옆에 있었더라도 저는 아마 쿠션을 골랐을 겁니다. 언니에게 물려질 사파이어와는 다른 것을 갖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냥 제가 쿠션 컷을 더 좋아하니까요.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를 따라 여기까지 왔으면서 정작 수많은 사파이어를 제 눈앞에 펼쳐놓으니 결국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버린 겁니다. 취향이라는 게 참 무섭더군요.

그래도 스톤을 샀으니 이제 반지를 만들 차례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를 꺼내봅니다. 커다란 오벌 사파이어를 라운드 다이아몬드가 둘러싼, 손가락 위를 화려하게 덮는 그 유명한 반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큰 현실적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케이트 미들턴의 사파이어는 무려 12캐럿. 제 것은 3.14캐럿이었습니다. 애초에 체급이 다른 공주님이었던 겁니다. 제 손이 크지 않고 손가락도 짧은 편이라 12캐럿을 올렸다면 오히려 과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무엇보다 제 예산도 12캐럿짜리 공주님까지는 허락하지 않았고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스톤이 안 되면 세팅의 힘을 빌리는 거죠.

그렇다고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를 그대로 작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엄마가 언니에게 물려주기로 한 사파이어 반지도 오벌 스톤에 두 겹의 헤일로를 두른 디자인이라 분위기가 비슷했거든요. 언니 몫을 탐내다 실패해서 스리랑카까지 가놓고 결국 비슷한 반지를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좀 우습잖아요. 그래서 중앙의 사파이어만 주인공으로 남겨두고 주변은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와 이런저런 디자인을 의논한 끝에 작은 라운드 다이아몬드를 얌전히 두르는 대신 바게트 컷과 프린세스 컷,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사방으로 배치해 전체 반지가 더 커 보이도록 했습니다. 공주가 되는 데 실패한 세월이 길다 보니 이런 잔머리만 늘었습니다.

취향을 따라 제작한 나만의 사파이어 반지 AI generated image by Christina Park.


그렇게 완성된 반지는 처음 꿈꿨던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와는 꽤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벌 대신 쿠션. 클래식한 다이아몬드 헤일로 대신 사방으로 뻗은 팬시컷 다이아몬드들. 같은 것은 한가운데 자리한 짙은 로열 블루 사파이어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좋았습니다. 좀 황당하기도 합니다. 케이트 미들턴과 뭐라도 하나 비슷해지고 싶다고 시작해 사파이어를 찾아다니고, 엄마 금고까지 기웃거리고, 급기야 스리랑카까지 가놓고서는 막상 제 손에 들어온 것은 케이트 미들턴의 반지와 별로 닮지도 않은 반지였으니까요. 공주님을 쫓아가보겠다고 시작해놓고 결국엔 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린 셈입니다.

지금도 저는 이 반지를 아무 날에나 끼지 않습니다.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고 싶은 날, 그러니까 공주가 되고픈 날 꺼냅니다. 이상하게도 네일까지 완벽히 되어 있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아요. 수없이 많은 스톤 가운데 직접 골라 흥정하고, 한국으로 데려와 디자인까지 고민해 완성한 반지라 그런지 이 반지를 끼는 날만큼은 손끝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어딘가 케이트 미들턴의 손가락 마디 하나라도 닮고 싶었던 오랜 프린세스 워너비는 이 정도면 제법 만족스럽습니다.

가끔은 외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엄마에게서 다시 딸들에게 이어진 주얼리와 제가 그동안 하나둘 모아온 보석들을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들을 물려줄 공주가 없구나.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이건 증조 할머니가 뉴욕에서 사신 거고, 이건 엄마가 스리랑카에서 직접 골라온 거야”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도 꽤 근사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뭐, 꼭 다음 공주에게 물려줘야만 할까요. 그냥 제가 저 자신을 귀한 공주님 모시듯 아껴주며 살면 되죠.

공주가 되는 데는 혈통이 필요했지만, 사파이어를 갖는 데는 취향과 다년간의 실전으로 다져진 흥정 실력이면 충분했습니다. 공주가 되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어린 날의 저와도 적당한 합의가 될 것 같네요.

Q&A
AI 마리봇의 Q&A
A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고도 결혼을 통해 웨일스 왕세자비가 된 케이트 미들턴을 동경하였습니다.
A
외할머니께서 1970년대 뉴욕 데이비드 웹(David Webb)에서 구입하신 칵테일 링입니다. 스톤이 아주 크진 않지만, 대담하고 화려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소중한 첫 사파이어 반지입니다.
A
케이트 미들턴은 12캐럿 오벌 스톤에 라운드 다이아몬드를 둘렀고, 필자는 3.14캐럿 쿠션 스톤에 바게트, 프린세스,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사방으로 배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