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코드 쿤스트, 우원재 그리고 부쉐론이 공유하는 자유와 예술이라는 비정형적 텍스트. 그 아래 너, 나, 서로라는 컨텍스트로 우리는.
대중음악과 현대미술은 오랜 시간 서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음악과 미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죠. 세 분도 음악가로서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회화에 매혹된 경험이 있나요?
우원재 사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지난 키아프(Kiaf) 아트 페어에서 멀리서 한눈에 예쁘다고 생각한 작품이 있었어요.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이더라고요. 성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작품을 마주하고 느낀 디테일과 표현은 사뭇 달랐어요. 그 이후로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을 찾아보면서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그때 그 감동이 잊히지 않아요.
그레이 김창열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해요. 제주도에 위치한 김창열미술관에서 본 작품이 인상 깊었어요. 또 일본 아티스트 베르디(Verdy)의 작업도 인상적이죠. 작품에서 폰트와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다양화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협업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팬을 만들어가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코드 쿤스트 저는 특정 작품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특히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앨머 토머스(Alma Thomas)와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예요. 선과 색을 무척 잘 활용해서 황홀감에 빠지게 돼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제 어머니입니다.
미술은 어떻게 음악이 될까요? 음악가로서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우원재 미술이 음악 작업에 실마리를 제공했다기보다는, 제게 영감을 주는 친구가 있어요. 직조 작업을 하는데, 작업실에 수작업 기계가 있어요. 실을 하나하나 꿰어 직조하는데, 세 겹으로 만들어요. 직조의 겹 수에 따라 디테일에서 큰 차이가 나거든요. 작업이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어요. 친구는 종일 그 작업만 해요. 친구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을 마주하면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요.
세밀한 작업을 반복해서 하려면 보통 집념으론 안 되겠군요.
우원재 단순한 반복 동작이 아니라, 굉장히 정교한 과정이 포함된 작업이에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처음 도안을 만들 때 수학처럼 공식이 있고, 이를 겹겹이 쌓아 어떤 색이 나올지 계산해야 하더라고요. 그 과정 자체가 어려운 작업이에요. 가장 충격적인 건 직조 작업은 수축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샘플로 수축률을 계산하고, 큰 작품을 만들 때는 의도적으로 더 크게 제작해서 최종적으로 원하는 사이즈로 줄어들도록 한다고 하더라고요.
코드 쿤스트 제 앨범이나 음악 작업에서 미술 작품이 주제가 된 적은 없지만, 예전에 패브리커 형님들과 롯데뮤지엄에서 전시를 한 적은 있어요. 그때 설치미술 작품에 맞춰 제가 음악을 짰고, 설치 미술과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는 전시를 했죠. 제 인생의 분기점에 관한 전시였는데, 아마도 그때가 제가 미술 작품을 보고 음악의 형태로 표현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표현했는데, 희로애락을 겪은 시기를 기억해내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그레이 미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개성이 강한 작품에 끌려요. 선호하는 작품은 제 기분과 무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요. 예전에 호주 아티스트 닉 톰(Nick Thomm), 노보(Novo) 작가와 함께 미술과 음악으로 무대를 꾸민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해’와 ‘데려가줘’를 만들었는데, 작가들과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작업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 대중 예술은 한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허무는 추세예요. 대중음악에서도 비주얼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작업에서 고민하는 문제, 혹은 비주얼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레이 영화음악 작업을 할 때, 시각적 요소를 보고 음악을 만들었어요. 대본을 먼저 읽고 음악을 만든 다음, 감독님이 그에 맞춰 안무를 짜기도 했죠. 보통은 음악을 먼저 만들고, 그에 맞는 비주얼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반대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시각적 요소가 음악에 영향을 주고받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우원재 저는 예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나 앨범 아트워크에 예민한 편이에요. 결국, 음악과 비주얼 모두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사람들이 사진의 의미가 퇴색되고, 3D나 AI 같은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손으로 만든 것에서 오는 부족한 점이나 실수들이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좀 더 옛날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한 번은 동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큰 당구대 같은 공간에서 무작위로 공들이 부딪히며 움직이는 작품이었는데, 그 우연성과 동적 요소가 흥미로웠어요. 그런 것을 뮤직비디오나 앨범 아트워크에 활용해볼
까 생각 중입니다.
저도 사진이나 영상 작업을 할 때 AI를 많이 사용해요. AI를 사용하면 디테일이 생생한 결과물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편리하지만, 이런 작업물이 늘수록 사람들은 사람의 손맛이 담긴 작업물에서 더 진정성을 느끼고, 선호하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봐요. 창작자로서 정교
해지는 AI 서비스를 어떻게 작업에 유용하게 사용할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코드 쿤스트 고민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AI가 발전하든 말든, 제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저는 제 음악에 집중해야 해요. AI의 발전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 발전에 반할 필요도 없어요. AI는 AI대로 발전할 것이고, 저는 제 방식대로 발전해야 합니다.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원재 나는 솔직히 AI를 굉장히 싫어했어.
코드 쿤스트 나는 싫어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 이런 개념이지 않을까? 옛날 가수들이 봤을 때 요즘 가수들이 오토튠 쓰는 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잖아.
우원재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제 가사에도 이런 내용이 있어요. “미안한데 없을 거야/ 나를 흰색 고글 끼고 만날 일은/ 메타버스 NFT 꼰대 소리 나게 싫음” 팬데믹 때 쓴 건데, 당시에는 AI나 메타버스 같은 것이 정말 싫었어요. 음악 자체보다는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편해지면서 생기는 부정적인 면이 싫었던 거죠. 인류에게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니까 제가 AI를 싫어하는 이유가 사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AI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코드 쿤스트 그럴 수도 있어.
우원재 AI가 만드는 음악에 위협을 느낀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쩔 수 없는 발전에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언제부터 경쟁하려고 음악을 했나, 그냥 내가 좋아서 음악을 만든 거잖아요. AI가 하나의 인격체라고 해도, 굳이 내 음악과 비교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물론 반항심이 조금은 있어요. ‘너 어차피 나보다 못해’ 하는 느낌도 있죠. 저는 제가 늘 하던 걸 계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코드 쿤스트 기술의 발전을 질투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어요.
그레이 저는 오히려 사용 가능한 부분에서는 AI를 활용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가이드 보컬 작업을 할 때 제가 부르고, 여자 보컬에게 들려줄 때는 AI를 사용해서 여자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바꿔줘요. 예전에도 가능했지만, 그때는 부자연스럽게 피치만 올린 느낌이라 모기 소리처럼 변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가이드 보컬로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와요. 기술이 얼마나 발전을 하든 쓸 수 있는 것은 활용하면 되는 거죠. 예전에도 샘플 사이트나 라이브러리 같은 것이 등장했을 때 음악을 쉽게 만든다는 말이 많았지만, 결국 살아남는 건 실력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없어요.
현대미술에서도 AI를 활용할 여지는 충분하리라고 봐요. 새로운 도구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거예요. 그 와중에 기발한 작업도 등장하겠죠?
우원재 요즘에는 AI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어요. 최근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 디스전에서도 드레이크가 AI로 가사를 쓰고 목소리를 입혀서 랩을 했죠. 이런 걸 재밌게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AI를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음악 플러그인 같은 기술 발전 덕분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제 취향은 사람이 만든 허점이에요. 그게 좋아요.
그레이 맞아요. 언젠가는 기술이 발전해서 그 허점까지도 따라잡겠지만, 원재가 말한 것처럼 결국엔 인간미 있는 작품이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신선한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를 얻는 건 아니죠. 여러 가지 요인이 작품의 가격을 형성하죠. 미술가가 전시를 하고 그림을 팔기 위해 고민하는 것처럼, 음악가들도 실험과 대중의 선호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겠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창작과 생업 사이에서 자유로운 편인가요?
우원재 저도 그런 고민을 해요. 하지만 철칙이 있어요. 미술가가 그림을 그릴 때 도화지를 펼치는 것처럼, 저희는 프로젝트 창을 열어요. 텅 빈 프로젝트 창을 다 채울 때까지는 이 노래의 목적을 정해놓지 않기로 했어요. ‘이런 노래를 만들어야지’ 하며 목적을 갖고 시작하지 않으려고 해요. 결과물을 봤을 때 ‘이건 돈을 벌려고 만든 음악인데 멋있다’라고 느끼는 것도 웃기지만, 그건 작업이 다 끝난 뒤에 결정할 일이에요. 물론 저희가 하는 일이 사업이고, 돈벌이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고민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런 고민으로 시간을 날리는 것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레이 그렇죠. 미술가들도 처음부터 몇 억원짜리 그림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건데, 그 가치가 나중에 정해지는 거죠.
우원재 맞아요. 가치는 나중에 결정되는 거고, 창작자들이 처음부터 그 부분을 크게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서로에게 작품을 하나씩 선물한다면, 무엇을 주겠어요?
우원재 저는 성우(코드 쿤스트) 형에게 제가 직접 만든 인센스 홀더를 선물하고 싶어요.(웃음)
코드 쿤스트 그게 작품이라고?
우원재 형들한테 하나씩 만들어준 거 있잖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제가 소파랑 침대를 디자인해서 만든 것처럼, 형들한테 제가 만든 가구를 선물하고 싶어요. 제가 가구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코드 쿤스트 선물을 받는 사람도 고려해야지.(웃음)
우원재 맞아요. 성화(그레이) 형이 그때 “이게 뭐야?”라고 말한 것도 기억나요.(웃음) 그래도 저는 제가 직접 만든 걸 선물하고 싶어요.
코드 쿤스트 저는 어울리는 선물을 주고 싶어요. 지금 롯데뮤지엄에서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 전시가 열리잖아요. 작품이 성화 형 작업실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원재한테는 예전에 원재한테 받은 작품을 다시 예쁘게 포장해서 줄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우원재 (웃음)편지 써서 예쁘게 포장한 거 기억나죠?
그레이 성격을 닮은 작품을 선물하고 싶어요. 성우에게는 그의 음악처럼 세련되면서도 모던한 작품, 원재에게는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한 작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