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앤 드뮐미스터의 컬렉션. 창립자의 후임으로 브랜드를 이끄는 세바스티앙 뫼니에는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 대신 오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시그니처 아이템을 각색하는 데 초점을 뒀는데,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변주된 남성적인 테일러링의 턱시도 수트가 도드라졌다. 재킷은 종아리 아래로 훌쩍 내려올 정도로 길이가 길어지거나 가뿐하게 짧아졌고, 라펠은 얇거나 넓게 혹은 비대칭으로 변형됐다. 그렇다면 팬츠는? 통이 넓은 헐렁하고 가벼운 라인과 밑단이 갈수록 좁아지는 조거 스타일, 허리를 감싸듯 여미는 형태를 오갔다. 늘 그렇듯 음울한 검은색이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메탈릭한 원단과 벨벳, 실크, 가로등 불빛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흑백 프린트가 중간중간 끼어들며 어두운 시야를 밝혔다. 부디 다음 시즌엔 세바스티앙이 설립자의 유산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