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당장 입고 싶을 만큼의 어떤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이자벨 마랑은 그 필요충분조건을 훌륭하게 갖췄다. 이번 시즌 역시 광적인 팬심을 지닌 열혈 고객은 물론 이제 막 멋 내기에 눈뜬 10대 소녀들의 마음까지 빼앗기에 충분했다. 앞머리를 동그랗게 소라처럼 말아 올린 헤어스타일이 예고하듯 컬렉션은 펑크풍의 테디 보이 룩으로 물들었다. 이는 디자이너가 1980년대 파리에서 펑크의 여왕이라고 불린 에드위지 벨모어와 클러빙을 즐기던 자신의 젊은 시절 스타일을 되돌아본 결과. 여기에 모즈 룩에 열광하던 1960년대 카나비 스트리트의 런더너를 오마주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발끝까지 길게 내려오는 넉넉한 사이즈의 헤링본 코트, 빅토리안 스타일의 러플 칼라 블라우스, 폭넓은 벨트로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한 하이웨이스트 팬츠와 스커트까지.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 멋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옷가지들이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여자들의 마음을 현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