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프랑스 고전 영화를 보듯 순수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일렁였다. 어둡고 웅장한 복도를 지나 관객 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리며 걸어 나오던 모델들에게선 크리스토프 르메르의 연인이자 파트너인 사라 린 트란이 지닌 묘한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졌다. “강하고 독립적이며 진보적인 동시에 현실에 뿌리를 둔 여자, 지적 호기심이 많은 예술과 영화를 사랑하는 여자죠. 그녀는 자신의 삶에 주인공입니다.” 크리스토프 르메르의 설명처럼 르메르의 여인들은 결코 옷에 묻히거나 갇히지 않고 온전히 자기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부드럽고 긴, 넉넉한 실루엣 속에 언제 어디에서든 입을 수 있는 팬츠와 멋스럽고 남성적인 재킷, 롱 코트가 주를 이뤘고, 때때로 둥근 소매와 볼륨, 러플 같은 여성적인 디테일이 가미됐다. 그건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파리지엔’ 다운 멋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