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연못가를 차가운 잿빛 천으로 뒤덮은 세트는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지난 시즌 자신의 애완견 ‘헥터’를 불러냈던 그가 이번 시즌에 반한 동물은 다름 아닌 펭귄! 쇼가 시작되자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블레이드 헤어와 패브릭을 오려 붙인 기괴한 메이크업을 한 모델들이 스케이트 날 모양의 굽이 달린 슈즈를 신고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아슬아슬하게 걸어 나왔다. 기묘하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지만, 이러한 장치도 톰 브라운의 진지한 고민과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을 감추지는 못했다. 전통적인 남성 수트의 모든 요소를 여성적인 실루엣으로 날렵하게 재해석한 룩이 컬렉션 전반에 펼쳐졌고,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이시한 그레이에서 무지개 색으로, 다시 블랙 앤 화이트로 컬러 팔레트가 이어지는 동안 헤링본, 인조 모피, 실크, 니트, 트위드, 나일론, 오간자 등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이번 시즌은 패브릭과 구조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어요.” 그렇다. 펭귄과 스케이트는 그저 거들었을 뿐. 완벽한 테일러링, 쿠튀르 디테일, 실험정신 그리고 스토리텔링과 위트까지 엿볼 수 있었던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