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새 시즌 쇼를 보는 내내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칼 라거펠트는 적어도 디자인 면에서는 존경받아 마땅한 거장이다. 패션계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친근해서 잊고 있던 그의 존재감은 긴 일정 탓에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게 만들었다. 신선한 시각으로 변형된 자연 모티프와 팝 컬러로 포인트를 준 드레스, 1980년대 리츠 호텔에서 걸어 나온 현대적인 여성을 연상시키는 트위드 재킷 그리고 쿨하기 이를 데 없는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한데 뒤엉켜 칼 라거펠트에게 쏟아지는 추앙을 부추겼다. 지난 시즌 화제를 모았던 PVC 소재처럼 과감한 시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도 높은 클래식에 트렌드를 완벽히 섞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회자될 만한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