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를 걸어 나온 모델들의 몸에는 쿠션처럼 속을 채운 패브릭 덩어리 여러 개가 얹혀 있었다. 레디투웨어라기보다는 천으로 만든 예술 작품 연작을 연상시키는 형태였다. 릭 오웬스는 쇼를 이끌어갈 영감을 시시포스(신에게 반항한 죄로 평생 산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신화 속 인물)에게서 얻었다고 밝혔다. 잔잔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물론 모든 룩이 쿠튀르를 연상시킨 것은 아니다. 릭 오웬스는 디자인 작업 도중 가끔씩 레디투웨어라는 쇼의 컨셉트와 본분을 상기한 듯했다. 그마저도 완벽히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라미네이팅된 레더 소재의 코트나 빅 쇼츠에 매치한 튜브톱 등은 비교적 일상복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는 이 쇼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현장에서 느낀 음악, 옷의 질감, 구조적인 실루엣의 조화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