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한 재킷과 등산복을 연상시키는 팬츠는 더 이상 발렌티노의 런웨이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브랜드는 이번 시즌 우아함을 회복했다. 로맨티시즘을 발렌티노다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설명처럼 발끝까지 흘러내린 드레스 자락과 부드러운 소재, 고급스럽게 톤 다운된 색감이 한곳에 모이자 설명이 불가할 정도로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발렌티노의 오랜 팬들은 패션계를 잠식한 유스 컬처에 잠시 현혹됐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럭셔리의 세계로 완벽히 복귀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중간중간 등장한 힙한 틴트 선글라스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컬러 조합에서는 그의 미련(?)이 아직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포착됐다. 아무렴 어떤가. 실용적인 룩 일색이던 파리 패션위크에서 그가 지켜낸 클래식의 가치는 유독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