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림의 스태프들은 모니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쇼장이 옥상인데 비가 멈추지 않아!”라며 또 웃기 시작했다. 게스트들이 하나둘 도착했지만 아무도 쇼장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빗줄기는 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양손엔 비닐 우비와 우산이 쥐여졌다. 비 오는 뉴욕에서 우비를 입고 관람하는 컬렉션이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면서도 로맨틱했다. 그리고 얼굴을 완벽하게 가리는 버킷 햇에 러버 솔 샌들을 신은 시크한 유목민 같은 소녀들이 젖은 런웨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컬렉션의 영감은 모로코 스타일이지만 필립 림은 타고난 미니멀리스트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고 컬러와 소재, 프린트에 집중한 룩은 휴양지에서도, 어쩌면 일상생활을 할 때도 문제없어 보였다. 특히 바스락거리는 포플린 소재 와이드 팬츠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베스트 그리고 긴 리본 장식이 매력적인 코튼 드레스. 이 모든 룩이 축축한 날씨, 짙은 구름이 낀 하늘과 무척 잘 어울려 일부러 비를 세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