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나비가 날아다니고 푸른 식물로 가득한 허물어진 공장. 이번 시즌 질샌더가 선택한 자연과 교감하는 쇼장의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은 앨런 와이즈먼의 책 <인간 없는 세상>이 그린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환경보호를 생각하게 했다. 스트리트 룩과 캐주얼룩이 하이패션을 주름잡는 현재, 미니멀리즘의 대명사 질샌더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며 트렌디한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디자이너 듀오가 선택한 컨셉트는 바로 유니폼.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지는 실루엣과 톤 다운 컬러가 중심을 이룬 컬렉션의 첫인상은 아주 깨끗했고, 셔츠, 지퍼 장식 베스트 등 유니폼에서 차용한 듯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또 니트 위를 수놓은 아티스틱한 드로잉과 점프수트의 깊게 파인 슬릿 등에서 질샌더 특유의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누가 미니멀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나. 질샌더의 이번 시즌 컬렉션을 보면 그 생각이 단번에 바뀔 것이다. 첫눈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찬찬히 볼수록 소유욕에 불을 붙이는 컬렉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