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갈리아노가 남성성의 전형을 전복하는 방법으로 젠더리스를 표현했다면,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사라린 트란은 젠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남녀 통합 컬렉션으로 진행한 이번 쇼에서는 실루엣이 비슷한 팬츠와 코트를 입은 여성과 남성 모델이 독특하게 구성된 런웨이를 정신없이 오갔는데, 그 덕분에 르메르가 강조하고자 한 ‘모호함’ 역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톤온톤 컬러 위주로 구성한, 색채와 디테일을 배제하고 드레이핑으로 완성한 룩은 더없이 모던하고 심플했다.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옷을 찾는 사람들에게 르메르가 셀린느의 대안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를 다시금 보고 느낄 수 있는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