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베의 수장 조나단 앤더슨은 새 시즌 컬렉션을 앞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갤러리를 걷는 인물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서로 알지 못하는 개별적 인물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죠.” 다소 난해한 그의 말은 이어진 쇼를 통해 증명됐다. 모든 디테일과 컬러가 서로 다르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무드로 이어져 있고, 하나같이 멋졌다. 그는 매번 크나큰 찬사를 받으며 로에베를 명실상부한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그 사실에 도취하거나 안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컬렉션을 관통하는 로에베의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여전했으나, 자세히 뜯어보면 모든 면에서 새로웠다. 남성 디자이너가 여성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고, 여성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앤더슨은 그 일을 매번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해낸다. 천재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의 감각은 변함없이 빛을 발했고, 피비 필로의 부재에 따른 패션계의 공허함을 달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