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당이 떠올랐다. 나무 두 그루를 중앙에 두고 얼키설키 걸려 있는 종이. 프라발 구룽은 네팔-아메리칸이다. 그리고 그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구상하는 동안 네팔로 떠났다. 형광색에 가까운 컬러 팔레트가 여기서 비롯됐다. 주홍, 연두, 노랑, 분홍 도저히 한데 섞으면 안 될 듯한
색의 향연은 네팔 테라이 지역에 터를 잡은 타루족의 전통 의복에서 영감을 받은 것. 그렇지만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한 건 아메리칸 스포츠웨어다. 비키니 톱, 긴소매 수영복과 나일론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은 통통 튀듯 가볍게 걸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환호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만큼 에너지가 느껴졌고 어딘지 모르게 기괴한 무대는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현란한 컬러, 타이다이로 완성한 프린트, 타루족에게 영감을 받은 화려한 시퀸 드레스 그리고 각기 국적이 다른 모델들. 아주 오래전 서울에서 만난 프라발 구룽은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날 그 에너지가 소호의 스프링 스튜디오에서 폭발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