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컬러 수트, 프린트를 가미한 페이크 퍼 코트, 유틸리티 베스트와 펜슬 스커트의 조합이 난무했던 겐조 컬렉션은 언뜻 보면 트렌드 키워드를 훌륭하게 배합한 결과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중국계 페루인 움베르토 레옹의 아버지, 그리고 아직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척들과 그들의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쌀을 수출할 때 사용한 가방에서 이번 시즌 메인 프린트를 따왔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덮던 두꺼운 담요는 워크웨어 셔츠나 코트로 재해석됐다. 가죽 블루종이나 유틸리티 베스트와 짝을 이룬 화려한 스커트는 축제 때 입던 여성들의 스커트에서, 네온 컬러 코트는 부족민들이 궂은 날씨에 입던 판초에서 비롯됐다. 중국계 페루인이라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소유욕이 들었을 것. 그게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옹의 힘이다. 가장 원초적인 곳에서 찾은 영감도 이토록 대중적으로, 매력적이고 쉽게 재해석해내는 능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