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새하얀 공간에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졌다. 날선 스태프들은 장내를 정리하느라 분주했고, 모두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를 목‘ 격하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모델이 거칠게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단단하게 건축한 듯한 코트에 스킨 컬러 스타킹, 투박한 실루엣의 메리제인 슈즈. 멀쩡한
옷을 모두 해체하고 다시 조합한 듯한 독특한 실루엣의 아우터, 팬츠를 재건축한 튜브톱 드레스, 짧게 잘라 레깅스와 매치한 해리스 트위드 코트가 줄을 이었다. 존 갈리아노의 ‘백조’들은 깃털을 장식한 시스루 톱, ‘필로 백’이란 별명이 붙은 글램 슬램 백을 연상시키는 코트에 레깅스를 입고 퍼덕이며 런웨이를 걸었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발레를 위한 곡이지만, 마치 격정적인 뮤지컬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폭발하는 색의 실크 프린트가 점잖은 코트의 뒤를 장식했고, 옷은 여기저기 찢어진 채 모델들의 발끝에서 펄럭였다. 우아하기 그지없던 카오스, 분명 존 갈리아노만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