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린과 마찬가지로 힙스터 무드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컬렉션으로 혹평 세례를 받았던 로베르토 까발리의 새 시즌 쇼를 감상하는 동안 강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폴 서리지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디자이너이던 시절부터 쌓아온 우아한 테일러링이 코트 위에 무사히 안착했는가 하면,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네크라인의 드레스는 다리 라인을 섬세하게 감싸는 부츠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고, 디테일 없는 심플함이 밋밋하게 느껴질 때쯤이면 화려하게 조합된 색채들이 런웨이 위를 채웠기 때문이다. 간혹 끌로에를 떠올리게 하는 고고학적인 분위기의 패턴과 디자인, 액세서리가 일관성 없이 등장해 몰입감을 해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될 만큼 잘 정돈된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