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로 컬렉션을 보고 끝내준다고 생각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에트로는 스타일이 분명한 브랜드다. 흔히 오‘ 트 보헤미안’이라 부르는 고급스러운 소재로 잘 만든 보헤미안 스타일. 브리지트 바르도, 제인 버킨 같은 1960 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이 즐겨 입었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베로니카 에트로의 2020 S/S 컬렉션은 최고였다. 다양한 길이의 러플 드레스, 섹시한 팬츠 수트에 레이어드한 골드 드레스와 헤비한 실버 주얼리 등 멋진 요소가 많았지만 모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전체 쇼피스에 비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피날레 룩이었다. 골반에 느슨하게 걸친 데님 팬츠에 코튼 셔츠의 단추를 아무렇게나 풀어 헤쳐 입은 모습은 감탄사가 새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이제껏 본 중 가장 담백하고 현실적인, 무엇보다 가장 따라 입고 싶은 에트로였다. 물론,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