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연상되는 흰 조명 아래 구속복을 입은 21명의 모델이 등장했다. 생각지 못한 반전이었다. 프린트, 과한 레이어드, 화려한 액세서리가 난무하던 이전 쇼와 백팔십도 달랐으니까. 그리고 조명은 다시 변했다. 진짜 쇼가 시작된 것이다. 톰 포드의 구찌를 잊은 사람은 없을 터. 단언컨대 구찌가 가장 섹시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이번 컬렉션의 기원이 됐다. 허벅지 위까지 찢어진 슬릿 스커트, 목 아래를 훤히 드러낸 네크라인과 레이스가 트리밍된 슬립 드레스 그리고 구찌의 시그니처 사‘ 파리 수트’. 그렇다고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정체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민트와 캐멀, 빛나는 초록색과 부드러운 연보라색의 매치. 대충 입은 듯하지만 완벽한 스타일링은 분명 미켈레의 것이었다. 쇼 노트에는 어려운 문장이 많이도 등장했다. 사‘ 회가 규정한 유니폼에 대한 해독제’가 바로 이 컬렉션이라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자신을 구속하던 틀을 깨고 나온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본 듯했다. 앞으로의 구찌는 굉장히 다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