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디올을 한 편의 거대한 여성주의 철학서로 집필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새 시즌 쇼에서 역사적인 페미니스트 단체 리볼타 페미닐레(Rivolta Femminile) 의 공동 창업자인 카를라 론지(Carla Lonzi)의 발언 ‘I SAY I(내가 말해야 할 것은 나 스스로 말한다)’를 메인 슬로건으로 차용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유감없이 풀어낸 것. 쇼장 내부는 ‘가부장제=비상사태’, '여성이 가격하면 세상은 멈춘다’ 등의 문구로 꾸며졌는데, 이 또한 익명의 페미니스트 그룹인 클레르 퐁텐(Claire Fontaine) 의 작품이다. 그러나 강렬한 문구에 반해 컬렉션은 평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우스의 유산인 바 재킷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강한 패턴을 부드러운 소재로 중화하는 실력도 여전했지만 이전 시즌부터 줄곧 보아온 실루엣이 주를 이뤘기 때문.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태도만큼은 다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