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에디터가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쇼를 감상할 때가 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할 때도, 더 즐거울 때도 있다.
에르마노 설비노는 후자에 가까웠다.
통통한 내가 입어도 멋스러울 것 같은
레오퍼드 무늬 코트, 조명에 반짝거리는
금사가 더해진 체크무늬 수트,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입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 것 같은 더블브레스트 코트,
모두 개인적으로 갖고 싶었던 룩이다.
에르마노 설비노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스타일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정리해 보여줬다. 평소라면 작은
움직임에도 과하게 반응하는 부드러운
퍼나 도저히 휴대폰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스팽글을 아낌없이 사용했겠지만
에르마노 설비노는 선수다. 가장 담백한
방식으로, 가장 잘하는 걸 보여줬다.
에디터의 입장에서 지루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고객에겐 이보다 즐거운 일이
없을 것. 20주년을 기념하는 아주
똑똑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