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퀸, 오스트리치 퍼, 무거운 체인, 잘
재단한 셔츠와 코트, 태피터 스커트.
누메로벤투노를 대표하는 수많은
키워드.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사랑하는 게 많은 디자이너다. 10
주년을 맞는 브랜드로서 기념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그가 사랑하는
코드만 모아 컬렉션을 완성해도
찬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은 사치였다. 지난 시즌
옷을 입는 방식으로 장난을 쳤던 그는
이번에 프로포션으로 재미를 더했다.
코발트블루 셔츠는 슈퍼 오버사이즈로
재해석됐고, 스쿱 넥은 명치까지
깊게 파였다. 지나치게 짧아 드레스나
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룩이 등장했고
아무 장식 없는 담백한 피코트는 모델
발등에 닿을 듯 길었다. 앞코가 날렵한
슈즈엔 두꺼운 체인 스트랩이 더해졌고
오스트리치 퍼 코트엔 손목을 가죽으로
묶은 셔츠가 매치됐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단 한 벌의 아카이브
피스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같은 날 밤 열린
파티장에서 사라졌다. 누메로벤투노
최고의 룩을 입은 손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다운
회고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