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율, 인습, 전통 등 해묵은 관념을 가뿐히 뛰어넘는 초월적 가족의 초상. 세 가족이 말하는 새 가족의 정의.

위부터 |
이혜옥, 심재식, 이경옥

서로 바라보고 돌보는 사이

심재식, 이경옥, 이혜옥

17년 전, 오랜 친구인 두 사람(심재식, 이혜옥)이 함께 살 집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9년 뒤 동네 이웃이던 동갑내기 친구(이경옥)가 합류하며 ‘노루목향기’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스스로 ‘어쩌다 노인 공동생활’이라 지칭하는 이 새로운 가족이 존속하는 가장 큰 힘은 서로를 돌보는 데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돌보며 지내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 말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노루목향기 가족의 시작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혜옥 우리가 여주에 온 지 몇 년 됐지?

심재식 너랑 나랑은 17년. 이혜옥 입주한 날이 2009년 4월 29일이에요. 나랑 심재식 선생이랑 집을 짓고 살다가 이경옥 선생은 2018년에 합류했어요.

이경옥 남편 먼저 보내고 혼자 살면서 이래저래 일이 있었는데, 그즈음 갑자기 집이 팔리게 되었고 두 사람이 이사갈 집을 구할 때까지 자기들 집에 잠시 이삿짐을 옮겨놓고 같이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구태여 거절할 일도 아니어서 같이 살게 됐죠.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같이 살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요.

이혜옥 나랑 같이 살래? 같이 살고 싶어. 뭐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우연찮게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심재식 선생과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같이 한 동료 사이였는데, 둘 다 서울을 떠나보자 하고 여주에 터를 잡을 때쯤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우리 둘은 여기서 집을 지어 같이 살자 하게 된 거고, 이경옥 선생은 이 동네에 먼저 자리를 잡고 살고 있어서 알게 된 사이인 거지. 그런데 공교롭게 다 동갑이야. 심지어 얘네 둘은 생일이 하루 차이고.

이경옥 3월 17일, 18일인데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도 아냐. 하하.

이혜옥 나는 좀 차이가 나요. 11월생이니까.

심재식 아유, 한참이지.(웃음)

이혜옥 따지고 보니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거지. 하여튼 각자의 사정이 겹쳐서 같이 지내게 됐어요.

가족 내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나요?

이혜옥 경옥 선생님은 직원 식당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10년이나 했어요. 그래서 음식은 잘하는데, 손님 많이 올 때만 해.(웃음)

이경옥 평소에는 심재식 선생이 주도해요. 왜냐하면 두 사람이 같이 오래 살았잖아요. 나는 후에 합류한 거고. 둘이 원래 하던 방식이 있으니까 터치 안 하려는 게 있어요.

이혜옥 식사 준비는 심재식 선생이, 나는 힘 쓰는 일 위주긴 해요. 이경옥 선생은 꽃과 식물을 가꾸고. 그 외에 분담이랄 건 없어요. 우린 자기가 잘하는 거, 할 수 있는 걸 해요.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보이는 사람이 하게 되어 있어. 시켜서 할 일이 아니잖아. 시킨다 하더라도 안 보이는 사람은 끝까지 안 보여. ‘스스로 하자’가 우리의 기조라면 기조예요.

생활 패턴은 비슷한가요?

이경옥 다 달라요.

이혜옥 우리 둘(이혜옥, 심재식)은 아침형이고, 경옥 선생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요. 그래서 아침 식사 시간만 정해서 같이 먹고, 나머지는 각자 생활하죠.

심재식 가만 생각해보면 셋이 같이 하는 게 거의 없어요. 대화도 많이 안 하고. 가족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다만 우리는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거예요.

이경옥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거죠.

세 분이 가족이 되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도 있을 듯합니다.

심재식 혼자 살았으면 밥 굶고 살았을 거예요.

이경옥 그렇죠. 같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챙겨서 먹게 돼요. 누가 안 먹는다 하면 옆에서 그래도 먹어라, 먹어라 하는 거죠.(웃음) 아플 때도 혼자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순간이 있는데, 지금은 살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돼요. 같이 살면서부터 더 건강해졌어요.

이혜옥 서로 돌봐준다는 거, 그게 제일 강점이에요. 대개 남은 돌볼 수 있어도 스스로는 잘 못 돌보잖아요. 그런데 셋이 살아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 돌보게 되는 거예요. 그게 좋아요.

반대로 양보하고 감내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리려는 이들에게 경험자로서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이혜옥 어떤 사람은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할 거예요. 언젠간 깨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언제까지 함께하게 될지 우리도 몰라요. 작정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보자 하고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지. 우리는 그냥 진행형이야. 다만 어떻게 지속하냐고 묻는다면 서로 인정해주는 것 정도일 거예요. 셋 다 한성질 하거든. 하하. 그걸 죽이고 산다는 거야.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뭐냐면 나이가 들었다는 거지. 저건 죽어도 안 변해, 이건 괜찮더라. 이런 걸 살면서 터득해왔기 때문에 굳이 강요하지 않고 터치하지도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무관심한 면도 있어. 그 사람을 무시해서 무관심한 게 아니라, 각자 생각이 다르니 그걸 억지로 한데 모으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그냥 무심하게 사는 거지.

심재식 내가 얘보다 일을 많이 하는데 얘는 왜 안 하지? 이런 마음이 들면 안 돼. 나도 젊어서 친언니랑 같이 살 땐 너는 월화수, 나는 목금토 이 렇게 꼭 똑같이 나눠서 하려고 했어요. 그게 공평하게 잘 사는 거라 생각한 거지. 그런데 공동생활에서 누가 더 많이 하나 생각하면 절대 같이 못 살아. 그리고 이혜옥 선생 말처럼 서로 간섭하지 않아야 해요.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른데, 내가 이렇게 한다고 쟤도 저렇게 하길 바라면 안 되는 거야. 그거 두 가지만 지킬 수 있으면 가족의 형태가 어찌 됐든 다 잘 살 거다 싶어요.

이혜옥 그래도 기본적인 룰은 있어야 한다고들 해요. 그런데 그 룰이 결국 깨지는 원인이에요. 거의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야. 왜냐, 한 번만 마음이 어긋나면 금세 돌아설 수 있는 남이니까요. 서로 참으면서 그래도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게 낫다는, 내가 처한 현실을 수긍하니까 살아지는 거지.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이혜옥, 이경옥, 심재식

세 분이 함께 살기 시작한 7년 전에 비하면 최근에는 가족의 형태가 꽤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가족의 범주가 넓어지고 있음을 체감하나요?

심재식 매체를 통해 보면 우리처럼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공동체라고 하면 정부에서 집 지어놓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 모아서 살게 하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식이 늘어나는 듯해요.

이혜옥 단양에 여성 몇 분이 같이 농사지으면서 사는 경우도 있더라고.

심재식 결혼하는 사람이 줄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어디서든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으니까 각자 방식대로 시도해볼 수 있는 거지.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이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바라는 부분이 있나요?

이혜옥 한 3년 전에 김희경 작가가 <에이징 솔로>라는 책을 냈어요. 우리한테도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던 터라 그 책을 읽어봤는데, 마지막 부분에 의료 문제에 대한 언급이 나와요.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플 때 병원에서 누가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또 얼마 전엔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었다가 결국 통과되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야 슬슬 이런 게 우리에게 실질적인 고민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긴 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지금 법이 그렇다는데. 다만 앞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고, 다문화 가정도 얼마나 많아요. 그런 가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거라고 봐요. 우리 사는 동안은 안 될지 몰라도 언제까지 지금에 묶여 있지는 않을 거예요. 어쨌든 지금은 아쉬워도 받아들이고 사는 거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 세 분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요? 가족의 정의를 내려본다면요?

이경옥 같이 지내면 가족이지. 심재식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죠. 혈연이든 남이든.

이경옥 아들은 장가보내고 나면 해외 동포라고 하잖아요.(웃음)

이혜옥 저 건너에 전원주택 짓잖아요. 다들 2층으로 지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자식들 와서 지내라고. 그런데 안 와. 심지어 저 집은 가족 많다고 3층으로 지었어.

이경옥 그래도 안 와. 하하. 가끔 한 번씩이나 오려나.

이혜옥 옆에 노인들 서너 분이 계셔요. 저분들이랑 우리랑 집은 따로지만 거의 같이 생활하는 거야. 앞집의 저 분은 치매기가 있어서 가족들이 홈캠을 설치해놨어요. 그래도 누가 돌봐? 우리가 돌봐. 저분들 TV 안 나오잖아요? 우리한테 달려와. 저분들도 우리 집 봐주는 거고. 그게 가족이고, 돌봄이에요. 내년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는데, 시설이 많아지고 서비스가 늘어난다고 한들 그건 실질적으로 삶을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진짜 돌봄다운 돌봄은 이런 거지.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나요?

이혜옥 너는 50 대 50이야?

심재식 나는 맨날 50 대 50이지. 좋은 일이 50 있으면 나쁜 일이 꼭 그만큼 있더라고. 인생살이가 그렇다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일흔셋이라는 나이의 나 자신을 보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에요. 더 이상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거죠. 왜냐, 어떤 일이 생겨도 봐줄 사람이 둘이나 있잖아요. 이렇게 좋은 집에서 내 몸 움직여서 살 수 있고. 자잘한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그건 따질 게 아니에요. 지금이 최상의 삶이에요.

이경옥 나는 만족도 90%. 아들들도 와서 같이 어우러지고 하면 좋겠는데 살기 바쁘니까. 나머진 다 좋아요. 지금 같이 하는 일 중에 혼자였으면 못 했을 게 태반이에요. 함께하는 덕분에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아요.

이혜옥 바라는 건 있어 봤자고, 더 하려고 들면 그건 욕심이고. 그냥 셋이 스스로 잘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앞날은 누구도 모르는 거고, 어쨌든 지금은 좋다 그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