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November Issue
점이 연결되어 선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점을 잇다 보면 그 형태가 드러나죠.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는 순간이 설레고 흥미로워서 계속 점 잇기를 하게 됩니다. 우연과 인연이 다양하게 중첩되며 여러 모양을 그려내는 삶 속에서 말이죠. 11월호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서울-부산-파리를 찍고 다시 서울에 돌아오는 점 잇기를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장면을 목격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례 없는 시대의 거센 파고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상념에 젖었습니다. 2025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를 성황리에 마친 밤, 부산 해운대의 까만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국의 추석 연휴와 맞닿은 한 주를 파리 패션위크 현장에서 치열하게 보내고 다시금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말이죠.
BUSAN
제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은 다채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다음 날인 9월 18일,
그 강렬한 기운을 받아 펼쳐진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 현장! 그 역시 한국 영화계가 버텨온 시간에 대한
경외심과 오늘날 한국 영화의 세계 속 위상에 대한 경이로움이 한데 어우러져 뭉클한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영화를 빛내기 위해 노력한 모든 아시아 영화인을 위한 헌사.
그리고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는 우아하고 강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순간 지난 10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김지운 감독님이 한 말이 떠올랐죠. 팬데믹 이전부터 영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영화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 말. 하지만 어떤 영화는 분명히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고, 또 그 영화 안에는 영화 정신이 깃들어 있을 거라는
그 확신에 찬 말을 곱씹어보았습니다. 매년 부산에 한데 모여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이들.
하늘의 별과 같은 이들이 그려놓은 천체는 언제나 빛을 발할 것임을 저 역시 굳게 믿으면서 말이죠.
PARIS
굵직한 패션 하우스의 수장 자리에 새로이 얼굴을 내민 디자이너들. 이들의 데뷔전이 기대와 흥분 속에
대대적으로 치러진 파리 패션위크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실은 그 역사적 장면을 목도하기 위해 한국의 수많은 프레스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코리안 패션 특급호’에 프레스만 총 60여 명이 탑승했다니 그 열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모든 매체가 열정적으로 포스팅한 순간들을 통해 여러분도 이제는 패션위크 현장을 친숙하게 느낄 듯합니다. 저 역시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취재 열기를 불태우기도 했으니까요. 이번 2026 S/S 시즌 컬렉션에서 패션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신이 탄생했습니다. 다름 아닌 올해의 패션 신 스틸러로 꼽을 만한 마티유 블라지의 뉴 샤넬 유니버스! 그는 이전에 칼 라거펠트가 오랜 시간 보여준 샤넬의 미감과는 사뭇 다른 실루엣과 비율, 미니멀한 구성, 혁신적인 디테일을 담대하게 선보였습니다. 혹자는 머리를 갸우뚱했지만 대다수는 그 동시대적 해석과 자신감에 기립박수를 보냈죠. 가브리엘 샤넬의 생애와 그 패션 유산을 깊이 있게 통찰한 새로운 수장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모던한 스타일 해방을 2025년 식으로 근사하게 주창했으니까요. 감사하게도 그 역사적 순간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여전히 패션은 진화하며 나아간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SEOUL
현재 세상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된 서울. 수많은 브랜드가 연간 스케줄의 가장 주요한 목적지로 서울을 꼽고 있습니다. 그 덕에 올가을에도 풍성한 문화적 경험을 하고, 매혹적인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목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아이코닉한 레인 드 네이플 여성 워치를 혁신적으로 선보이며 250주년 기념 행사를 치른 브레게, 세종문화회관과 대학로예술극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등지에서 다채로운 ‘댄스 리플렉션’을 주최하며 창의적 공연을 선사한 반클리프 아펠. 나아가 서울 한복판에서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집대성한 놀라운 주얼리 전시를 준비 중인 티파니에 이르기까지… 쪽잠으로 하루의 수면을 대신하는 분주한 마감 중에도 걸음을 바삐 옮기며 이 특별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이내믹했던 한 달, 이 정도면 점(별)을 이어 북두칠성을 그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참, 북두칠성은 우리나라에서 서울을 기준으로 1년 내내 볼 수 있으며 예로부터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여 벽화에 그렸다고 하네요.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부터 패션위크 출장에 이르기까지 소망하던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해낸 Team_Marie야말로 북두칠성을 이루는 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함께 그 점을 이을 수 있도록 순간순간을 완성해준 모든 이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각자의 점을 이어가는 여정에 변함없는 북두칠성처럼 서로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가을날을 꿈꿔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