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초원에서 보낸 생존기 같은 허니문.

생존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 세렝게티의 은빛 초원은 지평선을 이루고, 야생동물들은 흔들리는 풀처럼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수만 마리 누와 얼룩말은 일렬종대로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그러다 짝을 찾아 새끼를 낳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어린 얼룩말은 하늘도 나무도 다른 동물도 다 신기한듯 한참을 쳐다보다 종종걸음을 친다. 어미는 그런 새끼 곁에 머물고, 수컷은 포식자를 경계한다. 사자와 표범, 하이에나도 새끼를 키우려면 사냥을 해야 하고, 사냥이란 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바위처럼, 풀처럼 숨죽이고 초원에 녹아들어 인내하지 않고는, 또 협동하지 않고는 제아무리 초원의 왕이라 해도 먹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얼룩말과 누 같은 초식동물들은 살아남으려 다른 무리에 섞여 들어간다. 여럿이 있으면 사냥당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피터가 말했다. 피터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베테랑 레인저이자 두 아들을 둔 결혼 10년 차 아버지다. 허니문으로 세렝게티를 택한 우리에게 대단한 모험가라며 축하 인사를 했는데, 며칠 뒤 더 친해지자 동아프리카에서 허니문을 보낸다면 결혼 생활 정도는 거뜬히 견딜 수 있다고 축하에 셀프 디스를 곁들이기도 했다. 동아프리카는 여행하기 쉬운 지역이 아니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데다가 식당이나 카페 같은 도시 인프라도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비용을 요구한다. 하나 두려워할 건 없다. 세상 모든 곳이 그러하듯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고, 대부분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또 편리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호화롭게 지낼 수 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는 5성급 호텔이 즐비하고, 호텔마다 세렝게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레인저와 함께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야생동물들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다. 경이로운 코끼리 무리의 이동, 자동차 그늘에 눕는 사자, 하이에나의 끈질긴 사냥을 유리창 너머가 아니라 맨눈으로 본다. 무엇보다 짝짓고 새끼 낳아 기르며 살아가는 삶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그건 마치 결혼 생활의 예고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