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진가 네시 애플턴(Nessie Appleton)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메어 호웰스(Mair Howells)는 한집에 사는 퀴어 여성과 반려견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퀴어 커플의 시선에 비친 ‘정상 바깥의 가족’이 보여주는 돌봄과 존중은 가족의 개념을 끝없이 확장한다. 사랑을 기반으로, 저마다 스스로 세운 가족이 증명하는 ‘긴밀한 연결’의 힘.

월드리포트 World Report 마리끌레르 가족 반려견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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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s and their Dykes’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메어 작업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다가 우연히 레즈비언 관련 아카이브에서 40여 년 전 작업물인 ‘Cats and their Dykes’를 발견했다. 그때 마법에 걸린 듯 특별한 기분을 느꼈다. 레즈비언과 반려묘를 촬영한 사진들이 자아내는 친밀하고 따뜻한 기운이 참 좋았다. 그 느낌을 우리의 방식으로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를 다룬 ‘Dogs and their Dykes’를 기획했다. 한집에 사는 퀴어 여성과 반려견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그들이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네시 우리가 만난 퀴어 여성과 강아지가 가장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집이나 자주 가는 카페 등으로 향해 촬영을 진행했다.
메어 촬영을 시작하기 전 카메라 앞에 설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일상, 강아지의 사소한 습관, 둘 사이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 등에 대해 알아갔다. 겉으로 드러나는 개성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감정과 분위기까지 담아내려 애쓴 거다.
네시 최근에 촬영한 마야(Maja)와 반려견 지바(Ziva)가 떠오른다. 지바는 마야를 다방면으로 도와주는 도우미견이다. 이들의 사진은 인간과 반려동물이 얼마나 깊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오롯이 보여준다고 느낀다.

인스타그램(@dogsandtheirdykes)을 통해 촬영 결과물을 공개하고, 참가자도 모집한다. 프로젝트가 널리 전해지며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나?

네시 이 프로젝트는 일상이나 매체에서 본인과 비슷한 형태의 가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이들에게 ‘인정받는 경험’을 선사한다. 한두 명의 레즈비언과 구조된 강아지 등이 이룬 가정을 프레임에 담아낼 때, 오늘날 가족의 다양성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려 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메어 퀴어 가족에도 일상적인 친절, 유머, 애정이 녹아 있다. 그게 우리가 조명하려 한 점이다. 우리의 사진이 레즈비언과 강아지, 나아가 무수한 형태의 가족과 그들의 삶 속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사랑의 편지처럼 가닿기를 바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이 가족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메어 반려동물이 때로는 가족 안에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이같이 느껴진다. 친구처럼 위로와 즐거움을 전하거나, 삶의 동반자로서 무조건적 사랑을 내어주기도 한다.
네시 하지만 반려동물과 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동물 입양은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당히 큰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나?

네시 ‘가족은 항상 정상의 바깥에 있다’는 기존의 내 생각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메어 혈연가족을 갖지 못하거나 가질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이런 존재들은 다른 방법으로 외로움을 채워야 할 것이다.
네시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가족을 원한다. 다행히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가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만큼 가족을 대하는 사회적 관점도 바뀌어가는 듯하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선입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도적 지원 역시 미흡한 상황이다.

메어 맞다. 영국에서는 퀴어 커플이 입양이나 자연적 임신이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의료 기관 등을 통해 자녀를 가질 수 있는데,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절차도 복잡해 문턱이 높다. 여러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한 정책이 건강과 주거 등 다방면에서 필요하다. 다양한 가족을 정상화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고 보여주는 일이 그 변화를 위한 목소리에 힘을 더할 수 있다.
네시 소수자의 삶을 진솔하게 전하는 것 또한 정치적 행동의 일환이지 않나. 그러다 보면 사회의 인식이 단순한 관용을 넘어 진정한 수용으로 바뀌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메어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돌봄, 존중, 이해를 주고받는 관계라면 어떤 형태든 가족이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시 가족을 이루는 건 ‘혼자’가 아닌 ‘함께’를 단위로 살아가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가족은 집 같은 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안전하게 감싸주면서 편안히 웃음을 나누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개념의 확장 속에서 갖춰야 할 조건이지 않을까 싶다.

가족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메어 사람마다 다른 영향을 받겠지만, ‘지지받는다’는 감각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네시 가족은 삶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가족 안에서만큼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지 않나. 그게 삶을 살아가거나 타인을 대하는 방식, 스스로를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목표가 “퀴어 커뮤니티에서 가족의 재정의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본인의 언어로 새롭게 설명한다면?

메어 가족에 대한 정의와 이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든 가족은 다르다.
네시 가족은 사랑 위에 스스로 세운 공동체다. 내가 누군가를 택하고, 그들도 나를 택했을 때 하나의 가족이 탄생한다. 가족은 선택을 통해 의도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가족의 의미가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가족을 비롯한 여러 공동체를 통해 서로 이어져 살아간다. 이러한 ‘상호 연결’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메어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 하지 않나.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치유받고, 성장하고,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
네시 단단한 유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연결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한 위안을 주기도 한다. 마치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쉬고 있는 강아지의 온기가 문득 살아갈 힘을 주듯이. 이렇게 일상의 크고 작은 순간에서 상호 연결을 인지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스스로 좀 더 친절하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