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이준기 (full ver.) - 마리끌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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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이준기 (full ver.)

지금까지 본 이준기의 모습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지금껏 배우 인생의 극히 일부만 보여줬을 뿐이다.

이준기 화보

니트 터틀넥과 팬츠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여전히 많은 사람이 <왕의 남자>의 이준기를 기억한다. 왕의 사랑을 받는 남자를 연기했으니 이 젊고 새로운 배우의 등장은 요란하다면 요란했고, ‘공길’의 잔상은 꽤 짙었다. 그로부터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시칠리아 햇빛아래> 무대 인사를 위해 중국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는 그는 올해 개봉한 중국 멜로영화 중 첫날 스코어만 따지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충무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이준기는 많은 작품을 소화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고, 중국에서도 배우로서 꽤 단단한 입지를 다졌다. 그런 그가 자신의 시작점인 사극으로 다시 돌아온다. 중국 소설 <보보경심>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사극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이준기는 훗날 고려의 광종이자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인 4황자를 연기한다. 또 판타지고 사극이냐는 질문에 그는 빠른 호흡으로 명확하게 답했다.

“그동안 많은 판타지 사극에 출연했어요. 그간의 제 연기나 행보가 대중에게 실망을 줬다면 분명 다시 선택받지 못했겠지만 여전히 저를 찾아주고 저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건 그래도 지금껏 작품을 잘해왔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왕이 돼요.(웃음) 어쩌면 젊은 날의 사극으로는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질문 앞에 주저하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잘 정리된 생각을 막힘 없이 풀어내는 그는 좀 더 많은 작품으로 이제까지와 다른 이준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말했다. 그간 이준기의 많은 작품을 봐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가 배우로서 살아갈 날들의 시작을 봤을 뿐이다.

 

이준기 화보

카디건 조나단 앤더슨 바이 무이(J.W. Anderson by MUE), 슬리브리스 톱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다시 판타지 사극이다. 사극이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도 많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전에는 주로 원 톱으로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한 인간의 성장기를 많이 연기해왔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밸런스를 맞춰간다. 드라마의 배경이 고려시대인데, 이 시대를 그린 사극은 나도 처음이다. 처음으로 왕이 되기도 한다. 궁중 암투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 궁중의 미묘한 갈등과 정치적인 소용돌이를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작품의 장르가 다양하지 않은 점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 다양한 감정, 많은 액션 등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을 위주로 해왔다. 반면에 잔잔한 휴머니즘이 있는 드라마나 로맨스물은 별로 못 해봤다. 가끔 그런 작품을 많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담기에는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고, 내가 가진 장점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재미를 느꼈다. 이제야 비로소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하고 유연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맡을 작품에서는 보여줄 게 더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조급하진 않다. 나이도 들었고 그만큼 성숙하면서 담을 수 있는 감정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른 색깔의 작품에 출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또래에 비해 어려 보이는 내 얼굴이 배우로서 걱정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그동안 해온 작품이 쌓이고 내공이 더해져 좀 더 남자답고 농익어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나의 다양한 모습이 많다. 그간 현대극이건 사극이건, 몸을 쓰는 캐릭터가 많았다. 내 장점을 잘 아는데, 나는 몸 쓰는 걸 잘한다. 무용이든 액션이든 잘하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를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30대 중반이니 말이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들을 써먹을 수 있는 작품에 쏟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준기 화보

코트와 톱, 팬츠 모두 닐 바렛(Neil Barrett).

이준기 화보

우영미(WooYoungMi), 팬츠 옴펨(HOMFEM),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SNS를 꽤 열심히 하더라.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일인가? SNS로 팬들과 소통하다 보면 내가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나 지향해야 할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팬들은 나에게 소중한 친구 같다. 또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작품 이외에 예능 프로그램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배우로서 좀 더 진지하게 내 영역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아직 배우로서 나아가야 할 길, 해내야 할 일이 많고, 사실 예능감도 별로인 것 같다.(웃음)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작품을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도 있으니 이제는 조금씩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볼까 한다. 워낙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면도 있으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름다운 소년을 연기하며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신인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껏 해온 작품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왕의 남자>는 평생 기억될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작품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축복받은 삶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작품 덕분에 다양한 작품을 제안받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 작품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왕의 남자>는 어쩌면 내가 넘어야 할 산이자 목표점이다.

 

이준기 화보

재킷과 트랙 톱 모두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이준기 마리끌레르

니트 스웨터 우영미(WooYoungMi), 팬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영화 <화려한 휴가> 때처럼 좀 더 우리의 세계와 가까운 이준기가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작품에 대한 목마름은 없나? 당연히 목마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직 보여주지 못한 내 모습이 아주 많다는 거다. 배우 이준기의 인생은 앞으로도 창창하다.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할 것이고 그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런 목마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배우 생활을 앞으로 하루이틀 더할 것도 아니니, 차분하게 많은 작품을 하며 다양한 삶을 그려볼 것이다. 관객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작품도 많이 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소란스러운 스캔들 하나 없이 배우로 살아왔다. 시끌벅적한 연예계에서 고요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배우라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사생활을 관리해야 한다. 물론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감을 내려놓기도 힘들다. 오랜 시간 나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관리해왔고 이제는 그런 습관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불편하진 않다. 다만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면 어떨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하는 편이다. 배우란 사람을 그려나가는 사람인데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결국 가짜만을 그려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 시간에는 슬럼프의 순간도 있었겠지. 서른이 되기 전에 나름 모진 인생사를 경험했다. 오랫동안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그 때문에 송사에 휘말려 재산을 잃기도 했다. 법정 싸움으로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에 비하면 어렸으니 그 시간을 이겨내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은 멘탈이 꽤 강해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유연해지고 나 자신이 단단해진 것 같다. 신은 인간에게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을 준다고 하지 않나. 인생이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 속에서 그 파도를 타고 넘는 법을 배워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망하고 좌절하면 낙오할 뿐이다. 이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행복한 편이다.

이준기 마리끌레르

우영미(WooYoungMi), 팬츠 옴펨(HOMFEM).

오늘 촬영이 끝나고 가족 모임에 간다고 들었다. 가족을 너무 잊고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일만 하며 살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를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더라. 부모님 건강도 예전만 못한 게 보이고. 내 가족이 없다면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이 없다면 부모님이 멀리 떠났을 때 얼마나 슬플까? 가족은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관계여야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돌이켜 보니 그러지 못하고 살고 있더라. 그래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이제는 매년 온 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레 서로를 잘 아는 건 아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부모님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우며 고마운 아들로 기억되고 싶다.

 

안소희의 대답

스물다섯 안소희는 자기 앞에 놓인 질문에 침묵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자신의 속도로 답을 한다.

안소희 화보

퍼 재킷 톰 브라운(Thom Browne), 화이트 보디수트 와이씨에이치(YCH).

대화 방식으로 한 사람을 짐작해볼 때가 있다. 그 어떤 주제에도 막힘이라곤 없이 쾌속 질주하는 달변가는 속도감에 취해 성급한 확언을 일삼는가 하면 말끝마다 ‘진짜’, ‘사실’ 같은 부사를 남발하는 ‘사실주의자’의 말은 도무지 진실이라고 믿기가 어렵다. 안소희와 나눈 대화는 여백이 길었다. 그녀는 천천히 답을 이어가다가 한 박자씩 쉬기도 했는데, 더 생각해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제 안에서 정리를 끝낸 뒤 내놓는 답은 중언 부언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다. 과장하는 버릇도, 인정받기 위한 처세도 없이 차분하고 명료했다. 그 대화의 방식이 곧 안소희라는 사람 같았다. 조금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최선의 답으로 기대를 채워주는 그런 사람.

“연기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보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고 해요. 자신에 대해 꾸준히 생각한다는 건 연기는 물론 일상을 살아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연기를 배워가며 그녀는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치열한 아이돌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덧댔던 껍질이 이제야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거다. 조용하지만 정확한 방향 감각을 지닌 10년 차 직업인. 일이란 누구에게나 어렵고 복잡하다. 잘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계속하는 것이다. 안소희는 고작 한 편의 드라마와 두 편의 장편영화에 출연했을 뿐이다. 그녀는 보여줄 것이 더 많다.

 

안소희 화보

코트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인터뷰하기 전에 개인적인 근황을 알고 싶었는데 인스타그램을 안 하더라고요? 잘 못해요.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계정만 만들어놓고 방치할 것 같아서 아예 시작하지 않았어요. SNS를 잘하려면 셀카나 음식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 하는데 재주가 없는 것 같아요.

티를 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SNS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혹은 내 진짜 모습은 이렇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충동 같은 게 드는 때요. 그런 충동은 없어요. 말주변이 좋거나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노출된 생활을 해와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일상적인 것은 고스란히 나만의 일상이었으면 좋겠어요. 뭘 올릴 만큼 특별할 게 없기도 하고요.

인터넷을 떠도는 흔한 일상 사진조차 없는 게 그 때문이군요. 혼자 조용히 잘 다녀요. 보통 제 또래 여자들은 예쁜 옷을 입고 운동하러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운동이 끝나면 옷을 다시 갈아입잖아요. 전 그냥 처음부터 운동복 차림으로 나와요.(웃음) 조용히 티 안 나게 다니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것 같아요. 가수 활동 할 때 찍힌 사진은 꽤 있어요. 지금보다 어리기도 했고 그때는 꾸미는 게 재미있었어요. 일이 없는데도 혼자 치장하고 다녔죠. 패기 넘치는 스타일의 옷들도 많이 입고.(웃음)

 

안소희 화보

골지 터틀넥 빅토리아 베컴 바이 쿤(Victoria Beckham by KOON), 블랙 트위드 스커트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슈즈 펜디(Fendi).

고요한 일상을 보내는 요즘 가장 기쁜 일은 뭔가요? <부산행>이 천만 관객 영화가 된 거요. 드라마 <안투라지> 촬영을 준비하면서 그 소식을 들었어요. 크게 환호하고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슛 들어가기 전이라 차분히 눌렀어요.

영화 <부산행>은 지금까지 배우 안소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얻은 작품이죠. 가수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때와 지금의 관심이 다르게 느껴져요? 가수 활동을 할 때는 매주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한다거나 길에서 우리 음악이 자주 흘러나오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기를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어요. 영화는 매주 관객 수가 얼마큼 늘었다고 하는데, 이게 숫자다 보니까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도 50대 이상 어른들이 영화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면 깜짝 놀라죠. 정말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셨구나 하고요.

아이돌은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배우에게는 강력한 지지층이라는 게 없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죠? 맞아요.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달라요. 영화는 팬이 아니더라도 관객으로서 좋아해주는 거니까 다른 차원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저를 알아봐주고 연기가 좋았다고 말해주는 게 신기하고 좋아요. 그래서 더 책임감도 생기고요.

 

안소희 화보

<부산행>을 촬영한 지 1년이 지났어요.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많이 차분해졌어요.

원래 차분한 편 아니에요? 단편영화도 했고 드라마도 했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거라 걱정도 많고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더 빨리 완성된 작품을 확인하고 싶고 관객 반응도 궁금한데, 영화는 촬영하고 나서 개봉하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 시간 동안 기대했다가 답답해하기를 반복했어요. 아무리 혼자서 예상한다 한들 결과는 나와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열심히 한다고 했으니까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시간은 더 안 간다’ 하며 마음을 다졌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되레 편안해지더라고요.

표정 변화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이 마음속 요동을 알아채기 쉽지 않겠어요. 힘들다고 내색하고 싶지는 않고요? 내색하는 편이 아니에요. 장단점이 있긴 한데 일을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아닌 척하는 데 익숙해요. 보여주기 식이나 엄살까지는 아니더라도 때에 따라 조금은 내색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약간의 어리광이 허용되는 나이대가 있잖아요. 이제는 너무 감추고 숨기지는 않아요.

 

안소희 화보

샤 원피스 몰리 고다드 바이 분더샵(Molly Goddard by Boon The Shop), 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리본 칼라 비베타 바이 분더샵(Vivetta by Boon The Shop), 블랙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엇인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되죠. 스스로 만족하기란 쉽지 않고요. 그런 경험이 있나요? 혹은 연기가 그런 대상인가요? 어릴 때는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마냥 힘이 넘쳤거든요. 지금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초조하고 괴로워요. ‘더 해야 돼, 더 해야 돼’ 하면서 재촉하거나,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니까 오히려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요.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엄청 타요. 어디까지나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요.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애써요. 막상 일을 시작하면 편해지는 편이에요. 내 일이지만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는 거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고 나머지는 감독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을 믿는 거죠.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예전에는 혼자 많이 삭였어요. 아닌 척하다 보니까 더 힘들었고요. 변태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웃음) 지금은 상황을 조금 즐기려고 해요. 안 좋은 생각이 들때면 중간에 대충 끊지 않고 밑바닥까지 생각을 이어가봐요. 물론 그럼 더 우울해지겠죠?(웃음) 그렇게 지하 100층까지 내려갔다 오면 오히려 맑아지더라고요. 최악의 경우의 최악, 그 최악을 생각하려다 보면 최악의 최상급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털어내요. 좋은 생각도 해보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될 때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요. 정리된다기보다 정리하기가 한결 쉬워져요.

오늘 만난 소희씨는 과장이나 꾸밈이 없는 사람 같아요. 본인을 가장 잘 아는 친구들은 소희씨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던가요? 추진력 강한 행동파요. 그리고 의외로 번복왕이라고 하고요. 추진력은 강하나 방향을 자꾸 바꾸는 리더군요. 사소한 일에만 그래요. 계획이 없는 건 싫어요. 성격이 급해서 누가 뭘 해줄 때까지 잘 기다리지도 못하거든요. 결국 답답한 제가 못 참고 계획도 막 세우고 빨리빨리 하자고 재촉해요.

의외의 면이 많네요. 친해지면 저 재미있어요.(웃음)

 

안소희 화보

벨벳 점프수트 와이씨에이치(YCH), 스커트 레페토(Repetto), 슈즈 미우미우(Miu Miu), 리본 발레리아스포사(Valeria Sposa).

올가을에 방송하는 드라마 <안투라지>에서는 여배우로 등장하죠.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에 실제 나이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예요. 본인 성격과 흡사한 면도 있어요? 배우라는 역할도 그렇고, 어느 부분에 한해서는 편하게 연기한 것 같아요. 극 중에서는 남자 캐릭터들과 오랜 친구 사이거든요. 연기하는 도중에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만 하는 행동들이 나오더라고요. 친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툭툭거리거든요. 고마운 순간에 그냥 툭 ‘고맙다?’ 해버리고요.

스물다섯 안소희가 풀어갈 숙제들은 뭔가요? 오래만에 출연한 영화가 잘돼서 기쁜 만큼 책임감도 생겨요. 그 전에는 제가 연기자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도 많았거든요. <부산행>을 계기로 안소희가 연기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어 기쁘지만, 그 사실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부담스럽지 않게요. ‘어떻게 해야 잘 스며들 수 있을까?’는 지금부터 풀어가야겠죠.

 

안소희 화보

원피스 로맨시크(Romanchic), 슈즈 미우미우(Miu Miu).

 

꿈꾸는 슈가

생애 가장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방탄소년단. 이토록 뜨거운 열기의 중심에 선 슈가가 오롯이 홀로 완성한 자신만의 사운드로 청춘의 이야기를 전한다.

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 오리콘 차트 석권부터 유럽에서 남미로 이어진 월드 투어, 15만 장에 달하는 아시아 투어 티켓 매진까지. 아이돌 그룹으로 수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시간을 맞은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들고, 스스로의 무대를 연출하는 아티스트들이다. 가장 방탄소년단다운 트랙과 퍼포먼스로 뻔하지 않은 아이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7명의 남자들 가운데,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인스트림까지 차분히 질주해온 뮤지션 슈가가 있다.

한창 내달리다 벽에 부딪히고, 또다시 일어나 헤매고 전진하기를 반복하는 20대를 지나고 있는 슈가는 이토록 빠르게 스치는 순간들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금세 날아가버릴 일상의 기억을 사운드에 눌러담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라는 이름 대신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새로운 뮤지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그의 어엿한 믹스테이프에는 한 청춘의 아름다운 시간이 자유롭게 녹아들었다.

 

방탄소년단 슈가 화보

셔츠,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레이스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월드 투어에 이어 아시아 투어까지 잘 마쳤다는 소식 들었어요. 거의 2년 내내 해외 곳곳을 다녔으니 정신없었겠어요. 진짜 좋아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사는 거니까요. 브라질은 시차가 12시간이나 나요. 딱 지구 반대편에서 무대에 오르다니 신기할 따름이죠. 잠쯤은 덜 자도 괜찮아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믹스테이프까지 냈네요. 왔다 갔다 하면서 비행기에서도 곡을 쓰고, 해외 공연 끝나면 호텔 방에서 작업했어요. 이제 후반 작업은 거의 마쳤고, 오늘 인터뷰 끝나면 또 작업하러 갈 거예요.

어떤 곡들인가요? 방탄소년단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던 스타일의 트랙이 실려 있어요. 특히 가사의 느낌이 많이 다르죠. 제가 생각하는 청춘에 대해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거든요. 저 자신에 대한 내용도 솔직하게 녹여냈고요. 10대 후반에서 20대를 지나면서 겪는 현실, 이상, 갈등, 꿈 같은 것들을 소재로 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평소 그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나봐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니까요. 또래 친구들이나 친형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한 꿈이 없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사회적인 틀에 맞춰 살아왔는데, 어른이 되고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생각한 거랑 많이 다르니까. 끊임없이 나오는 취업이나 입시 문제만 접해도 생각이 많아져요.

그렇다면 민윤기라는 청춘은 어떤 20대를 보내고 있나요? 잘 살고 있는지는 조금 더 지나봐야 알 것 같은데, 아주 열심히 꽉 채워 살고 있다는 건 장담할 수 있어요.

 

슈가 화보

셔츠, 팬츠, 풀오버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슈즈 올세인츠(All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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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이프는 작곡, 작사부터 프로듀싱까지 오롯이 홀로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욕심도 좀 부리고 싶고, 담고 싶은 것도 많았겠죠? 혼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다 보니까 욕심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뭐든 대충 하는 건 용납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완성도를 높이는 데 최대한 집중했어요. 특히 트랙 리스트를 짤 때 고민을 많이 했죠. 흐름을 어떻게 짜야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분명히 담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요. 온전한 앨범만큼 꼼꼼하게 만든 믹스테이프예요.

그런데 정식 앨범이 아니라 믹스테이프라는 독특한 형태를 택했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냥 나 자신을 투명하게 표현해보자 하면서요. 생각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든 음악을 내보고 싶었거든요. 장르도, 가사도 다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그렇게 자유롭게 만든 혼자만의 음악이 방탄소년단으로서 작업한 음악과 많이 다른가요? 그렇죠. 믹스테이프에 제 이름이 ‘슈가’가 아니라 ‘어거스트 디(Agust D)’로 나오는 것처럼요.

 

민윤기 화보

셔츠, 팬츠, 풀오버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슈즈 올세인츠(All Saints).

방탄소년단으로 활동하기 전에도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어요. 데뷔 전에도 믹스테이프를 낸 경험이 있죠? 그때 낸 건 그야말로 들어주지 못할 퀄리티예요.(웃음) 3년 동안 방탄소년단으로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사실 아이돌로 데뷔하고 많이 위축되어 있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음악만 해온 사람인데 아이돌이 됐으니 이제 사람들이 날 다르게 보겠지?’ 하면서요. 근데 다 부질없는 생각이더라고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뭐든 달라질 수 있는 건데, 괜히 너무 진지하게 고뇌하고 무거운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아요. 늘 엄격, 근엄, 진지 모드였죠.(웃음) 당시엔 나를 가두는 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울타리처럼 느껴져요. 마음이 좀 편해졌죠. 음악에 대한 고집도 좀 덜어냈고. 뭐랄까, 예전보다 시야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에요.

일종의 성장 과정을 거친 셈이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자신감이 많이 단단해졌어요. 방탄소년단 멤버 모두 그렇죠. 7명이 각자 생각한 것을 한데 모으는 법을 알게 됐고, 무대에 대한 확신도 강해졌어요. 음악성, 안무, 퍼포먼스, 무대 세트 같은 각각의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한데 제대로 어우러져야 그럴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만큼은 무조건 잘해야 해요. 우리를 보러 공연장에 오는 팬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슈가 화보

안에 입은 톱과 레더 재킷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 곽현주(Kwak Hyun Joo),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방탄소년단 화보

무대에 대한 욕심이 많은 만큼 멤버들끼리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눌 것 같아요. 작업은 각각 따로 하고, 서로 만든 것을 정리해서 뭉치는 과정에서만 의논해요. 또 늘 일 얘기만 하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곡 작업을 할 때 영감은 어디서 받는 편인가요? 뭐든 끊임없이 메모해둬요. 매 순간 생각나는 것들, 문득 드는 감정들, 머리에 떠오르는 뜬금없는 단어들…, 몽땅 다 적어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기록해둔 것을 한 2~3년 후에 뒤적거려보면 꽤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거든요. 다른 뮤지션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이고요.

요즘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주로 들어요?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쓴 가사를 좋아하고, 최근에는 미국 래퍼 디자이너(Desiigner) 신보랑 래퍼 와이지(YG) 곡들도 많이 들어요. 국내 아티스트 중에 XXX라는 팀이 있는데 노래가 아주 좋아요. 아, 보컬 수란씨는 데모 앨범으로 처음 접했다가 빠져서 이번 믹스테이프 피처링 작업도 같이 했고요.

음악도 많이 듣고,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겠어요. 네, 맞아요. 제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에요. 작업실에 혼자 10시간씩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사실 한 여덟 시간은 농땡이 치다가 작업은 한 시간 정도 하지만요.(웃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그런 시간 없이 막 내달리면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혼자 앉아 있다가 쓴 가사 중에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요? 트랙 ‘투모로우’에 들어간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먼 훗날의 넌 지금의 널 잊지 마’. 이런 느낌의 가사가 좋아요. 위로나 성장에 관한 내용이요. 그냥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민윤기 화보

안에 입은 톱과 레더 재킷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 곽현주(Kwak Hyun Joo),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온통 음악 얘기네요. 다른 관심사 얘기 해보자면요. 음, 음악 장비 모으기? 반지나 목걸이, 팔찌 사는 거? 별거 없네요.(웃음)

방탄소년단의 SNS를 보니 평소 분위기가 대단히 유쾌하던데요. 슈가는 좀 조용한 편인 듯했어요. 저도 밝은 편이긴 한데,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또 멤버들 단체 카톡방에서는 난리가 나요. 저희 진짜 웃겨요. 자기 엽기 사진 찍어서 올리고, 끼리끼리 못생긴 모습을 도촬해서 공유하고요. 어제는 양세형씨 나오는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빵 터졌다니까요. ‘ㅋㅋㅋ’가 엄청 많아요. 각자 작업하고 활동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서로 응원도 하고 잘 지내요.

방탄소년단이라는 동고동락하는 팀도 생겼고, 하고 싶은 음악만 담은 믹스테이프도 냈어요. 고민해온 만큼 알찬 20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루고 싶은 게 아직 한참 남았죠. 더 잘하고 싶어요. 음악은 앞으로도 아주 오래할 거예요. 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을 거거든요. 20대에는 젊은 청춘답게, 30대, 40대 나이가 들면 또 그 나이에 맞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