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막스의 쇼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함께 시작됐다. 플리츠와 벨트 디테일, 푹 눌러쓴 베이스볼 캡, 밀리터리 무드의 코트, 부츠 등 강렬한 룩의 배경이 된 이 음악은 패션의 일부 요소가 남성복의 전유물로 사용되는 현실에 반발하며 그것을 비틀어 여성복에 녹여내고자 했다는 그라치아 말라골리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했다. 디자이너의 심오한 메시지를 떼어놓고 봐도 쇼는 성공적이었다. 모델들이 걸을 때마다 모래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황량한 분위기를 더한 런웨이부터 별다른 장식이나 패턴 없이 형태만으로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쇼피스까지 한마디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