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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은 어딘지 모르게 지루하다. 20년간 온갖 19금 콘텐츠를 섭렵했더니 내성이 생겼나보다. 웬만한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 컴퓨터 속 음란물은 하나같이 평범하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음료수가 나오듯, 클릭하면 특별한 것 없이 헉헉거리는 동영상만 쏟아져 나오는, 그런 영혼 없는 사이트들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한 사이트 주소를 건넸다. 이름은 ‘레드 홀릭스’. 회원 가입 했다. 신세계다. 야동은 없는데 야하다. 레드 홀릭스는 섹스를 주제로 한 포털사이트 같은 곳이다. 애널 섹스를 검색하면 그에 관한 방대한 정보가 주르륵 나열된다. 섹스 비디오가 아니라, 실제 경험자의 후기부터 안전하게 애널 섹스 하는 방법, 애널 섹스의 유래(?)까지 다채로운 콘텐츠가 펼쳐진다. 섹스 칼럼과 기사, 경험담, 체위 매뉴얼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 양도 실로 어마어마하다. 날 잡고 하루 종일 보아도 전부 읽고 들을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일주일간 칼퇴 후, 자리 잡고 앉아 정독했다.

월요일 밤에는 ‘아티클’을 읽었다. 이 코너에는 칼럼니스트들이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콘텐츠가 포진해 있다. 문장들이 야릇하고 차지다. 특히 직설 화법으로 쓴 여성 필자 ‘남로당’의 섹스 가이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섹스 칼럼의 정석.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적나라한 어휘로 써나간 글이다. 심하게 야한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필자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영화를 섹슈얼한 관점에서 본 ‘레알 리뷰’, 야오이 만화나 에로 영화 등 섹스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섹스 앤 컬처’ 등 온통 섹스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야한 생각이 여기 다 모여 있나 싶다. 토크 게시판에서 추천받아 넘어온 회원들의 ‘썰’도 흥미롭다. 회원들은 자신의 섹스를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어떤 이의 섹스는 웃기고, 또 다른 이의 섹스는 슬프다. 상상하게 되는 한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레드홀릭스가 섹스를 다루는 방식은 솔직하다. 섹스를 솔직히 다루는 만큼 성 문화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수요일 저녁에는 ‘레드’를 읽었다. 섹스 웹진 형태인데, 레드홀릭스에서 직접 진행한 화보나 탐방기, 섹스 토이 리뷰 등 세세하게 나뉜 카테고리가 주를 이룬다. 인상적인 콘텐츠는 ‘폴리페몬 브레이크’란 제목의 누드 화보 기사. 포르노에서 본 비주얼은 아니다. 적나라한 포즈도 없다. 예술성을 가미한 사진을 통해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탐미적인 인터뷰 화보다. 주인공은 주로 누드모델들. 얼굴을 가리고 활동하는 회사원 누드모델, 레즈비언 누드모델과의 인터뷰라니 신선하다. 그 외에 정독한 칼럼은 섹스를 체질학이나 병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학문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글이다. 성욕이 점차 퇴화되는 걸 느끼는 30대인 내게 꽤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다행이다. 역시 내 미비한 섹스 라이프는 체력 저하가 아닌 심적인 문제였다.

사실 성욕이라는 게 밤에만 치솟는 것은 아니다. 출근길에도 움찔거릴 때가 있다. 목요일 출근길에는 ‘미디어’ 코너에 있는 섹스 팟캐스트를 들었다. 수위가 매우 높고, 웃기다. ‘컬투쇼’의 음란 버전 정도랄까? 가장 마음에 든 팟캐스트는 ‘야설 읽어주는 여자’. 차분한 말투를 가진 여자 성우가 한 에피소드당 2~3개의 섹스 썰을 들려준다. 한 회당 30분이 넘는데, 출퇴근하며 듣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다. 고상한 목소리로 음란한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적나라한 소리로 성애 장면을 묘사하니, 흥분되다가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영상도 있는데, 공공장소에서 보기엔 좀 부담스럽다. 3명의 패널이 등장해 성인용품을 품평한다. 패널들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제품을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그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등장하는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성능과 파워, 능력치가 어찌나 제각각인지 섹스 토이는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싹 사라진다. 구입 전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금요일 밤에는 좀 외로웠다. ‘만남의 광장’ 코너를 클릭했다. 일종의 방명록 같은 공간인데, 다른 회원의 닉네임을 누르면 그 사람의 프로필과 쓴 글들을 모아 볼 수 있다. 쭉 훑어보며 나와 섹스 취향이 맞을 것 같은 이에게 쪽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한 여자한테 쪽지를 보냈는데, 별다른 진전을 꾀하긴 어려웠다.

주말에는 그동안 참아왔던 유료 콘텐츠를 보기 위해 결제했다. ‘아카이브’라는 코너에는 체위와 애무, 자위, 사정, 성기 단련(?)에 관한 수많은 매뉴얼이 정리되어 있다. 섹스 백과사전이라 칭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내용이 알찬데, 퀄리티도 꽤 훌륭하다. 위생과 안전 정보, 경험자의 후기는 물론, 누드의 남녀 모델이 섹스 체위를 재현하는 초고화질 사진도 함께 제공된다. 나는 ‘여성 성기 애무–여성 핵심 3 spot 공략하기’를 구입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친절하게, 순서까지. 실제 상황에 적용해봐야 알겠지만, 꼼꼼하기로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섹스 설명서다.

웹사이트의 핵심은 회원들의 참여다. 자유게시판에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올라온다. 오늘 읽은 책에 대한 감상, 회사에서 겪은 힘든 하루까지. 이곳의 사람들은 섹스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부를 털어놓는다. 익명 게시판, BDSM 게시판도 읽었다. 내로라하는 야한 글쟁이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다. 생동감 넘치는 야설에 몸이 금세 반응했다. 섹스와 관련된 사이트 중 내가 회원 가입 한 걸 누군가에게 들켜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다. 야동을 끊겠다는 건 아니지만, 섹스가 생각나면 우선 레드홀릭스부터 접속하게 될 것 같다. 사이트 탐방 2주 차에 들어선 오늘부터는 조금 더 활발히 활동해볼까 한다. 우선 게시판에 야한 생각을 이것저것 정리해 올려두고, ‘만남의 광장’에서 쪽지를 몇 개 더 보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