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조소나 프로듀서는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 제작 도중에 합류했다. 이길보라  초반에는 곽소진 촬영감독, 서새롬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다. 그러다 개봉과 배급 관련 경험이 있는 프로듀서가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소나 프로듀서에게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영화를 편집하는 단계였고, 우리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줄 프로듀서가 있었으면 했다. 무엇보다 20~30대 여성으로서 살아온 경험치가 비슷하기를 바랐다. 조소나 처음엔 이길보라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잘 짜인 팀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합류했다가 오히려 방해되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안해지더라.(웃음) 보라 감독이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에 유학을 가기 전에 미완성본을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더 이상 거절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작품이 괜찮고 팀도 안정적이어서 같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정적인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는가? 조소나  이 감독이 해외 영화제와 해외 세일즈 부분에 기대가 있었다. 국내 영화제도 같은 맥락에서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계획도 세워뒀었고. 그리고 해외 편집자나 제작자들이 <기억의 전쟁> 편집본을 어떻게 볼지 궁금해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란 소재 자체만으로도 무게감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편집본을 처음 봤을 때는 작가로서 감독의 시각이나 발견한 순간들이 감독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기보다는 희생자 수나 위령비의 뜻 같은 정보들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였다. 프로듀서의 역할 중 하나는 영화가 소재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거리를 벌려주는 것이다. 극영화가 감독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구현하는 형태라면, 다큐멘터리영화 감독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는다.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모색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내러티브를 구축할 때 감독이 경험하고 느낀 감정과 정서를 담아야 하는데, 사건을 해결하는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면 상대적으로 작품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소재의 무게감을 줄이고 감독이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랐다.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보는 시선을 어떤 식으로 <기억의 전쟁>에 담고 싶었나? 이길보라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이기 때문에 먼저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잘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다. 잘 전달하는 것이 능사인가, 이 안에 작가적 시선을 얼마큼 담아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두가지가 잘 어울러지게 할 것인가. 작업을 시작할 때 한국군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조사하고 기사를 쓰던 분들을 만났는데, 내가 아는 선생님 한 분도 그중 한 분이다. 당신은 그 이야기가 워낙 커 알리는 데 집중했지만 다음 세대는 다양한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셨다. 좀 더 작가적인 시도를 하고 싶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여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하는 베트남전쟁 관련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이길보라

이길보라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의 감독.

다큐멘터리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왜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조소나  어쩌다 보니.(웃음) 우연한 기회에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났고, 아르바이트 삼아 3개월 동안 다큐멘터리영화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지금까지 왔고, 어느새 8년이 지났다. 극영화가 현실과 가까우면 사실적이다, 묘사를 잘했다, 그럴듯하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나. 반면에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없다, 극적이지 않다 이런 식으로 평가할 때가 있다.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찾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의 특징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억의 전쟁>에 합류하면서 영화를 함께 한 생존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희생자를 위한 제사에도 참석할 겸 베트남에 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영화에 등장한 탄 아주머니가 시민평화 법정에 가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현실이 좀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이길보라  탄 아주머니가 한국에 가겠다고 말할 때 표정도 평상시와 확연히 달랐는데, 그걸 본 조소나 PD가 지금 인물이 변하고 있으니 촬영을 더 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촬영을 끝내고 편집 중이었지만 결국 추가 촬영을 하기로 했다. 당시는 프로덕션이 모두 끝난 상태여서 촬영을 더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조소나 PD가 촬영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웃음) 그리고 그로 인해 영화의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탄 아주머니가 주인공으로 영화를 끌고 가게 되었고 학살 당시를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서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신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다큐멘터리 작업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나는 뼛속까지 다큐멘터리인’이라는 거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랐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걸 깨달았으니 내게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세상을 향해 난 창이었다.

그런데 그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늘 좋은 곳일 수는 없다. <기억의 전쟁>도 마주하기 힘겨운 일이고, 이런 일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이길보라  이 영화의 주제가 무섭고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야기에 내가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내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베트남전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봤다. 그랬던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의 병 때문에 우리 가족은 연금 혜택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덕분에 막대한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배웠다. 이후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참전한 이유를 물으니 장애아를 두 번이나 낳은 할머니와 이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베트남전에 대한 조각이 도무지 맞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베트남에 가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퍼즐이 맞춰지기는커녕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 베트남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해 제사를 지냈고, 그곳에 그들을 죽인 한국인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평생의 꿈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를 기릴 수 있도록 위령비로 가는 길을 닦는 거라고 했다. 탄 아주머니의 꿈은 민간인 학살 당시 죽은 가족들의 뿔뿔이 흩어진 묘를 모두 합치는 거다. 한국은 어떻게든 그 일을 잊고 지우려 했지만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했다. 그 조각을 끼워 맞추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길보라  질문 없이 그냥 보여주는 것. 다큐멘터리영화도 명백히 예술 작업이다. 모든 예술작업은 메시지나 뾰족한 질문을 담고 있어야 한다. 조소나 현실에 있는 사람을 다룬다는 점을 잊는 순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여러 미학적인 시도와 아주 복잡한 관계를 잊게 된다. 윤리적인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이를테면 주인공이 자기 뜻대로 안 움직일 경우이 사람을 일부러 움직이게 하는 거다. 억지로 그림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 사람의 세계를 해석하는 것과 한 사람의 세계가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은 항상 주인공보다 반 발짝 뒤에 있어야 한다. 주인공보다 반 발짝 앞서 나가는 순간 많은 문제가 생긴다.

어떤 소재에 끌리고, 어떤 일을 보면 세상에 알리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이길보라  아직까지는 나와 내 주변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다. 공적인 서사가 담긴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수화언어가 모어인 농아 부모와 자식인 나의 이야기다. 내게는 수화로 말하는 것이 디폴트 값이지만 세상의 디폴트 값은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나는 결여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손과 얼굴 표정으로 말하는 것뿐인데 왜 불쌍하게 생각하는 거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의 아름답고 평범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고 이를 다큐멘터리영화라는 장르에 담게 됐다. <기억의 전쟁>도 우리 할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지금은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를 비롯해 엄마, 할머니, 주변의 많은 여성이 임신 중지 경험이 있는데도 왜 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나와 내 주변에서 발견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적인 기억으로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조소나  난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상황에 재미를 느낀다. 이를테면 참전 군인 같은 사람들. 엄청나게 큰 사건을 겪으면 사람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참전 군인에게도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의 전쟁>에서 피해자가 한국에 왔을 때 참전 군인들의 반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해자와 참전 군인이 함께 있는 현장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무섭고 이상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우린 아직 6·25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시대를 지나고 있다. 어떤 시대를 분명 같이 통과했는데 시대에 대한 이해도가 천차만별인 상태에서 시대를 흘려보낸 것이다.

<OUR BODIES>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이길보라  기획개발 단계다. 장편 다큐멘터리로 좀 전에 언급한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다룬다. 로그라인은 이렇다. ‘나는 낙태를 했다. 우리 엄마도 낙태를 했다. 우리 할머니도 낙태를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없을까?’ 네덜란드와 한국의 합작 프로젝트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조소나

조소나
한국과 벨기에가 공동 제작한 최우영 감독의 <공부의 나라> 프로덕션 매니저.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과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서울불바다>, 허철녕 감독의 <206> 프로듀싱을 맡았다.

다큐멘터리영화가 가지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조소나  요즘 이길보라 감독과 <기억의 전쟁> 제작기를 쓰고 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기도 한데, 나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특정 시즌마다 다시 소환될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의 전쟁>을 예로 들면 국가배상 청구소송 중인 탄 아주머니가 소송에 어떤 모멘텀이 생겼을 때 이 영화가 다시 언급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더 호출될 수도 있고, 덜 호출될 수도 있다.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논의가 진척될수록 영화가 어디론가 계속 불려 다니는 거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잘 모르겠다. 배급 상황 때문에 영화의 인지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영화를 보는 관객층도 폭넓지 않다. 영화 한 편이 사회를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어떤 것들이 논의되고 뭔가 진척될 때 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영화들이 호출되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영화의 생명력이 다른 장르보다 좀 더
길 수 있지 않을까? 이길보라 다큐멘터리영화는 현실을 마주하려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나도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영화가 비추는 끔찍하거나 잔혹한 현실이 두려워 보러 가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현실을 마주했기에 얻을 수 있는 힘, 현실을 직시하려고 시도하면서 받는 기운이 있다.

현재 쓰고 있는 <기억의 전쟁> 제작기에는 영화에 담지 않은 내용도 나오나? 이길보라  <기억의 전쟁> 제작기는 영화를 함께 만든 제작진 4명을 필두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쓰는 책이다. 글쓴이 중에는 영화를 리뷰해준 사람도 있고, 탄 아주머니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고, 현재 탄 아주머니가 진행 중인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어떻게 함께 하고 있는지 관련 내용까지 영화 안팎의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제작 과정을 비롯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조소나 PD의 표현을 빌리면 ‘베트남전을 이야기하는 8090세대의 첫 책’이다. 이 이야기를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이 전쟁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조소나  다큐멘터리는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다루기 때문에 아주 많은 사건, 사고가 생긴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드는 행위 자체가 모두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과정도 필요하고. 모든 것이 셋업된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저런 변수가 있고 이에 따라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카메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얘기할 기회가 관객과의 대화(GV) 말고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제작기의 형태로 책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한 작품을 대하는 여러 사람의 시선이 담겨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 인물의 표정을 누구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촬영감독이 지켜본 주인공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그 안에서 각자 생각하고 사유하며 성장한 방식이 모두 달랐다. 다큐멘터리 제작기이자 베트남전쟁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담긴 책으로 완성될 것 같다.

얼마 전 이길보라 감독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라는 제목의 산문집도 냈다. 이길보라  예술가로서 어떤 도전을 위해 네덜란드 유학을 결심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네덜란드에서 <기억의 전쟁> 작업을 마무리하며 어떤 질문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바탕으로 어떤 작업을 새롭게 시작했는지 정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3년간 이어온 고민과 시도, 모험을 보여주는 에세이집이다. 그간 나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이건 경제적인 부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답을 찾고자 한 것은 작업자, 예술가로서 어떤 작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며 작업을 마주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은 결국 책과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몇 명의 관객이 영화를 봤고, 몇 권의 책이 팔렸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질문을 가지고 어떤 시도를 통해 시각을 확장하고, 그렇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에서 다시 시도하고. 하나의 작업을 마치면 그 작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경험치가 되는 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성공과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나의 작업은 성공과 실패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계속 시도와 모험을 해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하며 만난 선생님과 멘토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한 것들이 왜 다 오래된 거고 나쁘고 실패한 거야? 너는 그걸 통해 경험치를 얻었으니 결코 잘못된 게 아닐 수 있어. 새로운 게 완전히 맞을 수도 없고. 왜 지난 것들을 다 갖다 버리려고 하는 거지?”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며 내 안의 많은 것을 깨나갔다.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히 다를 것 같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조소나  남성과 여성은 삶의 로직이 좀 다른 것 같다. 남성 감독들은 일반적으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확실한 팩트인지 아닌지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성장하면서 사유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 같다. 반면 여성 감독들은 일반적으로 관계적인 부분을 좀 더 들여다본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나이옥섭 감독의 <메기>,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는 기존 스토리텔링 방식을 벗어나 사유의 방식을 관계로 확장한다. 여성 감독은 관계 지향적인 내러티브에 강하다. 이길보라  여성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는 잘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동안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서사와 생각, 행동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남성 대법관만 존재했을 때 문제를 제기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여성대법관을 세울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권력의 중심을 남성들이 차지하던 분위기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그래야 평등이 실현된다. 남성이 독점하던 자리에 여성만이 아니라 성 소수자(LGBT)나 장애인도 들어가야 한다. 이제 남성들이 차지했던 운동장이 뒤집어져야 한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왜 다큐멘터리영화인가? 강유가람  다큐멘터리영화 현장을 처음 접한 건 여성국극 관련 다큐멘터리영화인 <왕자가 된 소녀들>을 제작할 때다. 그때 선배들 제안으로 조연출을 맡게 됐고 다큐멘터리영화의 매력을 알게됐다. 당시의 경험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 계속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내가 잘 몰랐던 한 사람의 인생을 구술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알게 되는 일이다. 그로써 나 개인이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창작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마민지  나는 원래 극영화를 공부했다. 장편 시나리오를 한창 쓰다가 어느순간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픽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다룰 줄 알다 보니 자연스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됐다. 처음엔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 그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와 픽션을 만드는 것보다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좀 더 탐구하고 싶어 오늘에 이르렀다. 오희정  나는 다큐멘터리영화 제작 외에 극영화 프로듀싱도 한다. 다큐멘터리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영화란 어떤 감상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거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질문을 품고 이에 대해 깊이있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한다. 이 또한 매력적이다.

실존 인물 혹은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에 담을 때 그 대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왜곡돼서는 안 되니 말이다. 강유가람 픽션이 아닌데도 감독의 시선에 따라 편집되기 때문에 왜곡되지 않는 방식으로 편집하는 윤리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부분이 늘 조심스럽고 어렵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매번 대상이 달라지고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온 분들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마민지  첫 다큐멘터리영화 <버블 패밀리>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다. 촬영 대상이 가족이다 보니 접근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지난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들과 연극을 준비했다. 사실 예술이 별로 쓸모가 없지 않나.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면 예술이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머니들에게 연극이 그런 역할을 한 셈이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타인의 삶을 영
화로 담으려고 한다면 그에게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오희정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실제 삶에 빚지는 작업이다. 때문에 그 삶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대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작업자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영화는 일반적으로 어떤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때론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 작업자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오희정

오희정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 공동 프로듀싱,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정윤석 감독의 <눈썹> 프로듀싱을 맡았다. 올해 DMZ인더스트리 피칭 프로그램에 선정된 한국 덴마크 공동 제작 영화 <하나 코리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쓸모의 가치를 생각했을 때 다큐멘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마민지  아직까지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최근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에 대해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기록의 힘 아닐까’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정답인지 잘 모르겠더라. 매체가 너무 많은 이 시대에 다큐멘터리에 정말 기록의 힘이 있긴 한 걸까? 요즘 윤리적인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오희정 PD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진정성’이라고 답하자 우리 모두 폭소했다.(웃음) 대답하면서 나도 고리타분하게 느껴졌으니까. 오희정  진정성은 기본이 돼야지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나. 우리는 창작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니 진정성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해야 한다. 진정성은 무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의 대답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강유가람  나는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인식에 대해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동의해주리라는 믿음이 가치라면 가치아닐까? 다큐멘터리만의 목표라기보다는 창작물의 목표인 거지. <이태원>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시간성을 담을 수 있다는 게 다큐멘터리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다룰 수도, 시간에 따른 변화도 느낄 수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창작물과는 다른 점이다.

현재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마민지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무용 치유 워크숍과 관련한 작품을 작업 중이다.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떻게 세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여성의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장애와 관련된 것에는 결국 젠더 폭력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해보기로 했다. 이 작업을 하며 윤리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다큐멘터리영화가 어떤 효용을 가지기 위해서는 등장하는 분들을 단순히 카메라에 담는 게 아니라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워크숍을 기획하게 됐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에 자문도 구하고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안무가, 무용치료사, 당사자들과 무용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두 달 후에는 워크숍을 오픈해서 더 많은 분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나 역시 우울증이 있다. 나도 집단 상담에 참여하며 그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오희정  마민지 감독과 이 작품을 함께 하고 있다. 보통의 매체에서는 피해 상황에 주목할 뿐 피해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지난한 싸움이 될텐데도. 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고 고민 끝에 워크숍을 기획하게 됐다. 회복의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큰 힘을 주고. 강유가람  <애프터 미투>라는 이름으로 미투 이후를 주제로 한 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의 한국 사회는 미투 운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았고 삶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다루고 싶었다. 미투라는 주제로 장편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다른 3명의 감독이 각각 단편 독립영화를 하나의 프로젝트 아래 작업하기로 했다. <구르는 돌처럼>과 <야근 대신 뜨개질>의 박소현 감독, <관찰과 기억>의 이솜이 감독, <통금>의 김소람 감독과 함께한다. 스쿨 미투, 문화 예술계 내의 미투 운동에 나선 이들을 담을 예정이다. 개인적인 삶에서 미투를 실천한 분도 촬영할 예정이다. 가정 폭력 같은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여기지 않지 않나. 하지만 그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다른 주제의 미투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그 이후를 다룰 생각이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마민지

마민지
<버블 패밀리>로 주목받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을 위해 마련한 DMZ 인더스트리에서 미투 이후 당사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활동을 담은 <착지연습>이 기획개발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

어떤 소재나 이슈를 보면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강유가람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꽂힌다. 계속 관심이 가는 주제는 여성의 삶과 결합된 이슈다. 올 하반기에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한 <우리는 매일매일>을 개봉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영화인데 1990년대에 대학교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주인공이다. 1990년대의 대중문화는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소환됐지만 페미니스트를 다룬 적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적인 궁금증이 영화 작업으로 이어진다. 마민지  나 역시 <우리는 매일매일>을 재미있게 봤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동기들의 나이가 무척 다채로웠다. 그중 연상의 동기들이 1990년대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얘기로만 전해 듣던, 말하자면 그 시대의 전설적인 페미니스트를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도 개인적인 관심사 중에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고 싶어지는 것들이 있다.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질문들. 오희정  그 작업이 던지는 물음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다큐멘터리영화는 작업 기간이 매우 길어서 보통 개봉하기까지 3~5년이 걸린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도 있다. 오랜 기간 작업에 몰두해야 하기에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내가 쉽게 대답할 수 있으면 마음이 잘 가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를 제작하며 공부를 하고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또 다를 것 같다. 여성의 노동, 성폭력 피해자, 페미니스트 등에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출발점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마민지  내가 지닌 문제들이나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편이다. 가령 <버블 패밀리>는 가족과 부동산 이야기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외환 위기 이후 여성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IMF로 인해 가부장이 무너지고 모든 걸 어머니가 대신하는 환경을 좀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오희정 PD와 작업한 <리틀노마드>는 몽골에 있던 유목민이 도시로 이주해 정착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 중심에는 10대의 몽골 여성이 있다. 강유가람 내가 여성이기에 겪게 되는 문제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작품에 드러난다. 여성을 사회적인 소수자라고 봤을 때 경험치가 일반적인 남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분명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 여성들이 사회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사회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선이 된다. 그러기에 영화를 만들 때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속 페미니즘을 배워가며 내가 지닌 다양한 자원을 좀 더 성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세상을 향한 관심은 자연스레 습득된다기보다는 공부하며 얻어지는 것 같다.

나에 대한 것이 아닌 이상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으니 그만큼 이해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강유가람  항상 그렇다. 마민지  그래서 영화 작업을 하면 당사자성을 가진 부분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된다. 최근 장애인들과 작업했다. 영상감독으로 참여했는데 비장애인인 내가 과연 장애인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 역시 조울증이라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 문제는 접근하기 어렵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오희정  나는 오히려 탈피하려고 한다. 제작자는 감독을 지지해야 할 때도 있지만 반대의 입장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으면 가끔 감독을 건져내야 한다.(웃음) 여성주의 다큐멘터리영화의 관객은 여성만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여성으로서 경험이 없는 남성 관객에게 여성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여성 다큐 감독 영화인 강유가람

강유가람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시국페미>의 감독.단편 <모래)로 제3회 DMZ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최우수 한국 다큐멘터리상 수상했다.

다큐멘터리영화만이 지닌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계속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마민지  IMF 외환 위기를 겪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분명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를 다룬 작품이 별로 없었다. 담론이 형성되지 않으니까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일을 겪은 관객들이 <버블 패밀리>를 보러 왔다. 그중에는 영화를 보며 우는 분들도 있었고. 나만 경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리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다큐멘터리영화는 위로가 된다. 강유가람  <모래>를 만들면서 마민지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자료를 세상에 내놓다는 데 대한 자부심도 있다. 마민지 감독이 IMF 관련 영상 자료가 별로 없다고 한 것처럼 나도 <왕자가 된 소녀들>에 참여했을 때 여성국극 배우들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 이 시기를 어떻게 회고하는지 이끌어줄 자료를 찾지 못한 것을 계기로 ‘왜 여자들의 역사에 대한 자료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됐다. 여성들의 예술은 국가 지원의 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제대로 자료화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을 계속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정 감독의 <왕자가 된 소녀들> 개봉 이후에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 <정년이>가 나왔다. 다큐멘터리영화는 이처럼 다른 창작물에 영감을 주는 매력을 지녔다. 오희정  강유가람 감독의 얘기처럼 다큐멘터리의 원형은 기록에 있다. 그리고 영화에는 기록의 대상이 되는, 그 빛나는 삶이 있다. 다큐멘터리영화의 가치는 바로 그 삶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생’이 있다. 영화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생의 고유한 성질 아닐까? 그 불확실성이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변화무쌍한 생의 힘이 다큐멘터리영화의 가치이기도 하고. 과거의 기록을 넘어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성찰하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감각을 곧추세우고 공부하게 된다. 강유가람  동감한다. 단순히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생각하기에 영화로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들 때 추억팔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과거로부터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편집하고 어떤 이야기를 키워드로 뽑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사건 그대로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더해야 한다는 고민.

다큐멘터리영화를 시작하고 자신의 시선이나 생각에 변화가 느껴지는가? 강유가람  내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로망이자 환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진짜 다양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한 사람과 접속하는 경험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를 통해 세계관도 많이 확장되고 스스로 성장하기도 한다. 좌절할 때도 많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내 안의 편견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자라온 환경과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편견을 부수게 된다. 오희정  맞다. 세계가 확장된다. <피의 연대기>에서 프로듀서로 작업하면서 3년 동안 생리, 여성의 몸, 여성 용품만 팠다. 김아영 작가의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전시의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는 예멘 난민들을 만나며 이민자로서의 여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내 세계가 점점 확장된다. 그들의 삶에 접속하게 되면서 내 안에 있었던 것들도 많이 발견하고 한계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마민지  감독뿐 아니라 촬영 일도 하기 때문에 평소에 만날 수 없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발달장애인들과의 워크숍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어머니들의 연극 작업도 지켜봤다. 영상 작업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들과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