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특수 청소 전문가이며 작가인 김완의 책이다. 그가 운영하는 하드웍스는 고독사 현장에서 일한다. 사람이 홀로 죽은 집에서 작가는 죽은 자가 살아온 시간을 만난다. 찬장에는 똑같이 생긴 머그 둘이 나란하고 욕실 양치 컵에는 칫솔 둘이 다정한데 망자는 혼자 떠났다. 냉동실에는 하나를 둘이 갈라 먹는 하드가 들어 있다. 이별을 감당하지 못해서, 어쩌면 남은 사랑을 홀로 어쩌지 못해서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 가구 하나 없이 떠난 사람도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에 덩그러니 텐트 하나뿐이다. 그래도 일기는 있다. 폭풍우 치는 세상에서 자기 안의 등불은 지켜내고 싶었던 사람. 그러나 비와 바람과 세상이 모질어서 내면의 불꽃은 꺼지고 말았다. 머리맡에 약봉지를 그득히 두고 혼자 피를 토하며 죽은 사람도 있고, 세상에 대한 미련인 듯 쓰레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떠난 사람도 있다. 더 아픈 건 재활용 쓰레기까지 꼼꼼히 분리해놓고 떠난 사람이다. 책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살기를 그만두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읽는 동안에는 반대로 무엇 때문에 우리가 계속 사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 김완이 내가 운영하는 서점을 찾아왔다. 실은 근처 올 일이 있는데 지나는 길에 서점 현관 앞에 꽃을 두고 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만난 적 없는 사이였으나 용기를 내어 북 토크를 청했다. 서점 마당에 50명이 앉았고, 50명이 섰다. 꼼꼼히 준비된 인상적인 강의 도중에 김완 작가는 말했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스스로 죽지 않아요.” 단호하게 강조했다. “개인화된 사회일수록 동네 커뮤니티가 중요해요. 가까이 사는 사람들 중에 마음이 맞고 취향이 통하는 사람이 모여 있어야 사람이 살아요. 그래서 동네 서점이 소중해요.” 그는 약속대로 꽃을 주고 떠났다. 치유의 색이라는 보랏빛 리시안셔스였다.
서점에서 내 별명은 ‘정서점’이다. 우치누마 신타로가 <앞으로의 책방 독본>에 쓴 ‘책방은 사람이다’에서 가져온 별명이다.
“정서점님, 호박 사주세요.” 서점에 새로운 스태프가 들어왔다. 울산 출신인 그녀는 서점 근처에서 자취하며 대학에 다닌다. 모여서 책 읽는 독서실 멤버로 지내다가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처음 방문한 건 서점이 아니라 서점 옆에 붙은 티 전문점이었다. 영국 문화권에서 자란 그녀는 제대로 된 티를 마시고 싶어 옆집에 들렀다가 서점에 흥미를 갖게 됐다. 책을 추천해달라기에 그녀에게 어울릴 한국 소설을 한 권 건넸는데 며칠 뒤 환한 얼굴로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단숨에 다 읽었어요.” 한 권 한 권 사서 읽더니 얼마 뒤엔 독서실 멤버로 합류했다. 호기심이 많아 뭐든 배우는 자세라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1년 전, 이병률 작가의 <혼자가 혼자에게>가 출간됐을 때다. 나오자마자 읽고는 독서실 멤버들에게 한 구절을 소개했다. 작가는 길게 여행을 가는 일이 많았는데, 두고 온 집과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엔 현지 시장에 가서 달걀을 한 판 산다고 했다. 달걀말이를 두툼하게 해서 뜨거울 때 훌훌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 향수를 달래고 여행을 계속 할 수 있다고 했다. 조리 과정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써두었던지 독서실 멤버들은 읽는 내내 입맛을 다셨고, 귀갓길에 야식을 샀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보내온 문자메시지였다. ‘대왕달걀말이를 했어요.’ 사진 속 노란 달걀말이는 통통하고 속이 알찼다. 뜨끈한 채로 먹고 싶어 답을 보냈다.
“다음 주 독서실 모임 할 때 달걀말이 만들어서 같이 먹어요.”
“저 달걀 잘 못 마는데요.”
“괜찮아요. 여기 요리 잘하는 멤버도 있어요.”
일주일이 지나 다시 독서실. 멤버들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녀의 요구대로 양파와 당근을 다졌다. 지나다 들른 모 출판사 마케팅 부장님은 앞치마를 두른 채 칼을 들고 있는 서점 주인이 재밌는 듯 자꾸 웃었고, 케첩이 없다는 말에 동네 주민 한 분이 케첩을 사 들고 뛰어와주었다.
달걀은 잘 뒤집어지지 않았다. 당황하는 그녀를 요리 잘하는 멤버가 도와주었다. 비 오는 날이면 수육을 해서 서점을 찾아오던 청년이었다. “정서점님, 영양 보충이 필요해 보여요. 마당에 나가서 수육 드세요. 제가 잠깐 서점 봐드릴게요”라며 밀폐 용기를 내밀었다. 유리 너머 고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둘은 나란히 서서 달걀을 말았고, 또 나란히 집에 돌아갔다. 다음 날 서점을 찾은 청년이 말했다. “밤길을 혼자 가길래 환한 곳까지 데려다줬는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20대에게 서점이 마음 붙일 곳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저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옷 가게 주인에게 마음 붙여서 옷을 아주 많이 샀거든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마음 붙일 곳이라니. 달걀말이 덕분에 중요한 걸 깨달았다. 이후, 몇몇 20대 단골들이 나를 정서점 대신 ‘서울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달걀을 말던 그녀는 서점에 오는 좋은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같이 일하게 되었다. 어제 본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2호점에서 일하는 그녀가 뛰어 들어왔다. 국화 화분 둘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화분을 감싼 크래프트지 위로 까만 색지가 붙어 있었다. 눈과 입 모양, 핼러윈 호박에 붙어 있을 법한 모양새.
“해피 핼러윈!”
“쉬는 날에 어쩐 일이죠?”
“이번 주말이 핼러윈이라 매장에 핼러윈 느낌을 내보려고 샀는데, 2호점에 놔도 될까요?”
“당연하죠!”
“어디다 둘까요? 제가 둘 곳을 생각해봤는데요….”
놓을 곳을 상의하다 말고 대뜸 그녀, 또 신났다.
“호박도 사고 싶었는데 플라스틱으로 된 것밖에 없더라고요. 우리 서점은 플라스틱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호박 사달란 거야?”
“네! 정서점님, 호박 사주세요.”
호박이라니. 늙은 호박이라니. “무거워서 못 옮겨요. 나는 못해요”라고 했지만 ‘정서점님, 호박 사주세요’라는 말이 귀에 울린다. 아무래도 근처 재래시장에 다녀와야 하나 싶다며 SNS에 올렸더니 또 다른 단골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여기 상암동 MBC 앞 노점에서 늙은 호박 팔아요. 이걸로 나중에 호박죽 해주세요.’ 그녀 역시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호박죽 만드는 법을 찾아본다. 방송 작가 시절엔 차가운 도시 여자 소리를 들었는데 연남동 시골 마을 동네 서점 주인이 된 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늙은 호박은 어떻게 잡는 거냐고 물었다.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딸이 외롭지 않을까 걱정하던 어머니다. “우리 딸 외롭지는 않겠네” 하며 웃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식구를 만들어간다. 동네 서점의 색다른 기능이다. 우리를 웃게 하던 한 사람이 어머니와 같이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워하자 자살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친구가 말했다. “약속이 있으면 사람은 죽지 않아. 내일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면 오늘은 안 죽는다는 거지. 서점에서 재미난 행사를 계속 만들어줘. 적어도 거기 오기로 한 사람은 오늘과 내일 살아 있을 테니까.”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문틀에 새겨진 글귀를 되새긴다.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마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른다.’ 문장 아래 한참을 서 있었다. 오늘은 친구와 김완 작가가 남긴 당부 아래 서 있다. “기댈 곳과 만날 사람이 되어주세요. 그래야 사람이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