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다른 꽃들이 피어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정원.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
집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도로에서 조금 들어가니,
놀랍게도 전원주택 단지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누리의 집에 들어선 뒤 그 충격은 배가되었다.
도무지 가정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정원과 쾌적한 거실,
그리고 잡지에서나 볼 법한 주방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누리
@pickygardener
일러스트레이터와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며
양재동에서 작은 독립 서점 ‘믿음문고’를 운영한다.
꿈같은 전원주택에서 든든한 남편,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 두 마리, 사이 좋은 닭 커플과 함께 지내고 있다.

“전 도시의 편리함과 야경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오피스텔에,
결혼 후에는 아파트에 살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서 할머니가
채소를 정성껏 키우시던 모습이 떠오르며 전원 풍경에 향수가 일더라고요.
당시 키우게 된 강아지 믿음이가 마음껏 뛰어놀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솜씨 좋은 정원사가 가꿨다고 해도 손색없을 아름다운 정원, 주변에 편의 시설이나 높은 빌딩 하나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전원주택을 보면 안주인이 번잡한 곳을 사랑했다는 사실도,
식물을 들이는 족족 죽이고 마는 ‘식물 살인마’였다는 사실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주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 어린 시선을 보낸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이 집 부부는 할 거리가 많은 집을 찾아 이곳을 선택했다.
사실 적응하기 쉬웠던 건 아니다. 너무 조용한 적막감에 짓눌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하게 됐고,
지금은 번잡한 곳에 가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갖게 된 건 이사한 지 1년이 지난 후였다.
원래 있던 대로, 잔디만 잘 가꾸다 튤립 구근을 한번 심어봤는데,
이듬해 새싹이 난 것을 본 뒤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심게 됐다.
조그만 새싹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힘을 얻은 뒤 여러 꽃을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개화 시기가 저마다 다른 온갖 꽃을 고루 심어 사시사철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정원을 완성했다.
햇빛 아래 땀을 흘리며 식물을 가꾸다 보니 일상이 더욱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이렇게 정원 일에 매력을 느낀 이들 부부는 온실까지 만들었다.
겨울을 버티기 힘든 식물을 보관하거나 씨앗 파종 같은 소일거리를 하기 위해 지은 공간이다.

“환경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늘 새롭고 멋진 것을 찾고 일에 초점을 맞춰 살았는데,
여기에 온 후부터는 생활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었거든요. 큰일이 없다 보니소소한 모든 것이 크게 느껴져요.
여기에 왜 잡초가 났을까? 새싹이 잘 컸네! 이런 감각들이요.

‘예전에는 왜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까, 참 정신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집이 워낙 크다 보니 인테리어를 두 번에 걸쳐 진행했다.
한 번에 전체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집값에 버금가는 비용이 발생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주방과 정원은 지난가을에 리모델링을 했다.
기획자로 일하며 쌓은 안목에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본 예쁜 인테리어 레퍼런스가 더해져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안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에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었지만, 현명하게 취사선택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조언 중 받아들일 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본인들이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이라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집을 완성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큰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밖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이 저마다 제 색을 빛내고 있었으며,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투닥거리며 그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제 곧 떠날 휴가지의 리조트가 떠올랐고,
어느새 마음은 편안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여행지로 떠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