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UN이 여성의 해를 선포하자 아이슬란드여성 단체 대표들은 중요한 사항을 결정했다. ‘10월 24일 아이슬란드의 여성은 누구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사노동, 아이 돌봄까지 모두를 멈췄다. 여성들의 노동이 사라지면 아이슬란드가 어떻게 되는지 남성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90퍼센트의 여성이 노동을 멈추고 광장에 모였다. 1년 뒤 아이슬란드에서는 성평등법이 통과됐다. 5년 뒤에는 세계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현재 아이슬란드는 쿼터제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국회를 갖고 있으며, 최장기간 세계경제포럼 선정 세계 성 격차 지수 1위 국가다. <이코노미스트> 선정, 일하는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1위지만 아이슬란드 파업은 보여줬다. ‘일하지 않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저서 <보이지 않는여자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국의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동등하지 않다, 부당하고 억울하다 같은 모호하거나 감정적인 문구 대신 수치를 제시한다. 오랜 기간 세상의 아주 많은 표준이 남성 위주로 결정됐다. 남성만이 보편이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여성에 대한 데이터는 부족하거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고 부른다. 공백을 채우자 다른 면이 보였다. 대단히 명백하게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표준 사무실 온도를 결정하는 공식은 1960년대에 40세 70킬로그램 남성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여성은 배제되었다. 평균 기초대사 차이를 고려하면 여성에게 적정한 실내 온도보다 무려 5℃가 낮다. 한여름에도 여성들이 긴소매 옷이나 스카프를 챙겨 출근하는 이유는 그들이 유별나기 때문이 아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사무실 환경 탓이다. 도시계획부터 자동차 디자인, 심지어는 피아노건반 크기까지도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해왔다. 데이터에서 배제됨으로써 여성은 표준 인류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았다.

여름의 실내 냉방 온도가 성차별적이라면 겨울철 제설 작업도 문제였다. 2011년 스웨덴의 도시 칼스코가 공무원들에게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시의 정책을 성평등 지침에 따라 다시 평가할 것. 성인지적 관점에서 전부 다시 볼 것. 공무원 한 사람이 농담처럼 말했다. “적어도 하나는 젠더 감시단이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제설 작업.” 이덕분에 젠더 감시단은 질문해보게 됐다. 제설 작업은 과연 성평등에 부합하는가.

숫자로 펼쳐진 눈밭 위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기울어 있었다. 보통 제설 작업은 차도에서 시작한다. 인도는 다음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순서가 남녀에게 얼마나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고야 알았다. 상상조차 못 했던 차이가 발생한다.

국적을 막론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한다. 프랑스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자의 3분의 2가 여성이다. 시카고에서도 62퍼센트가 여성이다. 남성들은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 차가 한 대뿐인 경우 남성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갈 때는 도보로 이동한다. 여성이 더 많다.

이동 패턴 역시 다르다. 여성은 보다 복잡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맞벌이 부부를 예로 들면 출근길에 여성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확률이 2배 더 높다. 퇴근길에는 장을 보러 간다. 근거리 도보 이동 역시 여성이 더 많다. 특히 전 세계 돌봄 노동의 75퍼센트를 여성이 차지한다. 아이나 노인을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경우 역시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장을 보고 난 뒤에는 짐을 들고 있다. 아이의 짐이나 노인의 짐을 대신 들기도 한다. 차도에는 남성이, 보도에는 여성이 많은데, 심지어 짐을 든 여성이 많은데 차도의 눈을 먼저 치운다. 제설 순서는 과연 성 중립적인가. 눈 쌓인 곳에서 운전을 하는 것과 유모차 혹은 휠체어를 미는 것,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칼스코가시 공무원들은 의료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보행자가 외상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끄러운 보도에서 보행자가 넘어져서 다칠 확률은 운전자의 3배다. 겨울에 홀로 길을 걷다가 다친 사람의 69퍼센트가 여성이다. 부상 정도는 여성이 남성보다 심각했다. 보행자 사고 처리 비용이 겨울철 도로 관리 비용의 2배였다. 통계자료 수집 후 제설 순서가 바뀌었다. 뭐가 달라졌을까. 사고 발생률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오래, 우리는 눈이 오면 차도를 먼저 치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캐럴라인크리아도 페레스는 말한다. ‘일부러 여자를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통계에 포함하지도 않았다.

젠더 데이터 공백은 전 지구적이며 생활 전반 구석구석에 걸쳐 있다. 영국의 경우, 위생공사 기준에 따르면 건물 내 화장실 공간 비율은 남성과 여성이 5:5여야 한다. 이는 과연 성평등에 부합하는가? 여성의 화장실 사용 시간은 남성의 2.3배다. 아이나 장애인, 노인을 동반한 여성은 더 늘어난다. 여성들이 평생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줄 서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될까. 또 안전은 어떨까. 전 세계 여성들이 용변을 보기에 안전한 곳을 찾느라 보내는 시간은 1년에 9백70억 시간이다.

질문이 끝도 없다. 왜 놀이터에는 남자아이들이 더 많을까. 공공건물 계단 높이는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가. 자동차는? 현대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설계 시에 사용한 표준 인간 모형은 1백83센티미터의 남성이었다. 불편했다면 우리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묻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시대는 지나갔다. 집계되지 않아 분명 거기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통계자료 안에서는 투명 인간이 되어야 했던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말하고, 쓰고, 더 크게 말하고, 더 분명하게 쓰며 여성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분야에 여성의 진출을 늘려야 한다. 권력과 영향력이 있는 여성이 늘어날수록 여성의 존재가 명백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존재가 명백했던 여성,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대법관, 평생 여성과 소외된 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세상에 관해 말했다. “저는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우라는 것뿐입니다.” 한편 여성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세요.”

말하고, 더 분명히 말하고. 함께, 더 함께. 보이지 않는 여성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보이는 존재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