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spoetic_design
오지창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패션 브랜드의 스토어
기획과 연출 업무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미세스 포에틱을 설립해 공간 디자인,
스타일링, 비주얼 머천다이징(VMD) 등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전시 기획과 연출, 그리고 다양한 주거 상품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감각적인 형태의 건축 프로젝트

차분하고 간결한 오지창의 디자인 철학이 녹아든 실내 공간

 

서울 성북동 한 골목에 자리한 집.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면, 오랜 세월 중첩된 멋이 느껴지는 나무 대문을 집주인이 직접 나와 열어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색다른 환대에 가슴이 설레는 것도 잠시, 내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중정과 거대한 유리창과 기와지붕의 절묘한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실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생각보다 더 좁구나’. 실제로 이 집의 크기는 대지 면적이 20평(66㎡) 정도인데, 이 중 6평(20㎡)은 중정을 포함한 외부 공간이 차지하기 때문에 실평수는 14평(46㎡) 남짓하다. 공간 디자이너 오지창과 남편, 그리고 두 사람의 아들이 머무는 이곳. 너나없이 더 넓은 집을 갈망하는 이 시대에, 다소 좁아서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세 식구가 모두 집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애착도 커요.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꼭 살고 싶었던 이 동네에 와서, 꽤 오랜 시간 살고 싶은 집을 찾아 헤맸고, 어렵게 찾아낸 이 집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꾸몄죠.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집에 있어요. 전 책을 읽고, 남편은 기타나 피아노를 치고,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죠. 지금보다 더 넓은 집에 살 때에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늘 셋이 옹기종기 붙어 있더라고요. 그런 우리의 생활 방식을 고려해봤을 때, 이곳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은 한옥으로 이사한다고 할 때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주변의 우려와 달리, 사는 데 불편이 없다는 이들. 이들의 성향 외에 불필요한 가구나 잡동사니가 없다는 점도 이 집에서 사는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짐이 거의 없는 건 꼭 필요한 물건만 지니고 살고 싶은 오지창의 신념 때문. 사실 그가 처음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산 것은 아니다. 대학교 때는 여느 여대생들처럼 그 역시 예쁜 가방이나 명품을 사 모았다. 브랜딩 작업을 위해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예쁜 물건을 탐내기도 했다. “카페 오픈 소식이 들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사
진을 찍고, 예쁜 것을 사고…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니 어느 순간 허무하고 허탈하더라고요. 삶의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고 할까. 그 시기에 읽은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도 큰 울림을 준 것 같아요. 많은 것이 넘치는 세상과 시대를 살면서 불필요한 것들에 에너지와 마음을 빼앗기기 싫었고, 제가 안을 수 있는 만큼 소중한 것들만으로 이루어진 생활을 하며 제 삶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규모를 줄이기로 마음먹었죠. 실제로 실천하기까지는 10여 년이 걸린 것 같아요.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고요.” 꼭 필요한 것만으로 채운 에센셜 라이프를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의 목록 작성. 그러자 덜어내야 할 것들이 보이고, 자연스럽게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따져가며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게 되었다. 그렇게 짐을 줄이는 동시에, 스스로 다소 강제성을 띠기 위해 좁은 공간으로 이사하는 결단도 내렸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이 집이다. 남편 박승배 역시 이런 아내의 신념에 적극 공감하고 지지한다. 항해사로 일하며 오랜 승선 생활과 기숙사 생활을 통해 미니멀하고 에센셜한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공간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공간의 크기보다는 그 속을 채우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을 처음 봤을 때도 충분히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예스러운 모습을 간직했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지 않았던 이 집을 보고 ‘쪼끄만 늙은 집’이라는 제법 정확한 감상을 남긴 아이 역시 훌륭히 적응해가고 있다.

 

“사실 한옥을 고집해서 이 집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내 몸 편하자고 많은 흔적을 남기며 사는 것이 늘 불편했기 때문에, 흔적을 줄일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한 곳을 찾다가 운명처럼 이곳에 오게 됐죠. 이 동네에서 6년 정도 사는 동안 산책하면서,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출근하면서 자주 만나던 집이었어요. 수수하고 담백한 인상이 좋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인연이 닿았죠. 이후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한옥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리모델링했습니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이 집의 고유한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것은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도 어긋나거든요.”

깔끔하게 정돈한 서까래와 한지를 덧대 은은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중문, 그리고 곳곳에 놓인 세련된 소품들은 이곳을 더욱 아늑한 세 사람의 아지트로 만들어준다. 침대를 없애 밤이되면 요를 깔고 잠자리에 드는 다소 번거로운 일상이지만, 누우면 보이는 하늘은 이런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한다. 좁은 공간의 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소비에 더욱 신중하게 되지만, 그러면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한 걸음씩 더 다가가고 있다.

 

 

화려하고 요란한 것보다는 수수하지만 자신만의 기운을 지닌 존재에 매력을 느끼는 오지창 디자이너의 취향에 이 집은 정확하게 부합한다. 오랜 시간을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의 모습을 지켜온 이 집에는 단단한 기운이 녹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주요 구조재가 나무인 한옥은 사계절에 따라 나무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언젠가는 점점 커가는 아이를 위한 방이나 부부가 사랑하는 ‘홈트’를 위한 공간, 그리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명상할 수 있는 웰니스 룸도 갖고 싶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한옥은 세 사람의 삶을 더없이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세 식구의 단단한 애정이 가득한 한옥. 처음엔 좁게만 보이던 이 집이,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는 넓디넓게 느껴졌다.

 

TIP

오지창이 말하는 짐 줄이는 방법

1. 수에 제한을 둘 것
늘 쓰는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고, 꼭 필요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수를 제한할 것.
머그컵은 5개, 수저는 열 벌 하는 식으로 한계를 정해두고 좋아하는 것만 남기면 내 취향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2. 물건이 필요한 순간에 맞게 정리할 것
온 가족이 동시에 손톱을 깎지 않는 한, 세탁기가 5대가 아닌 한, 보조 요리사가 네댓 명 되지 않는 한 손톱깎이, 세제, 주방 가위는
하나면 충분하다. 동시에 여러 개를 쓰지 않는 물건을 자꾸 사들이면 결국 기존에 쓰던 것을 버리게 되니 무턱대고 사지 말 것. 물건을
하나를 마지막까지 쓰는 즐거움도 꼭 느껴보길 바란다.

3. 내 집을 물류 창고로 만들지 말 것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물건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나와 내 가족에게 기꺼이 내어주자. 여백으로 비워둬도
좋다. 무엇이든 많이 쌓여 있으면 내가 뭘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4. 트렌디한 가구나 가전, 소품을 구입할 때는 의문을 품을 것
짐이 많으면 집도 커져야 한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내 삶의 질이 달라질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점검해볼 것. 소품을 살 때에도
물건이 놓일 자리를 꼭 생각하고 구입해야 한다. 공간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시를 쓰듯, 노래를 부르듯, 중간중간 쉬어가는
여유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