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삶

@atelier_nonoyeye
김민주

식물을 좋아하는 아트 디렉터 겸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광고업계에서 아트 디렉터 겸 포스트 프로덕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든든한 남편과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수많은 식물들과 함께 삶을 꾸리는 중.

김민주 대표의 집 사진을 먼저 본 후 촬영을 위해 집 앞으로 찾아갔을 때, 자못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푸릇푸릇한 온실과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발한 화단을 보면서 큼직한 전원주택을 머릿속에 그렸는데, 주소를 따라와 보니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도심 속 한 건물 앞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층의 X호’라는 말을 듣고는 퍽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서 마주한,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를 보며 한 번, 그리고 베란다 너머 온실을 통해 들어오는 싱그러운 늦봄의 정취를 느끼며 또 한 번 사라졌다.

“사실 제가 평소 생각하던 집보다 크기가 많이 작고, 살면서 한 번도 와본 적 없던 동네라 다소 망설였어요. 하지만 베란다 크기와 화단 상태에 반해 덜컥 계약했습니다. 살아보니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자연과 가깝고 치안이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요. 집에서는 주로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편이기 때문에 늘 아래층을 신경 써야 하는데, 이 집은 1층인 데다 큼직한 화단도 있어서 저에게 딱 맞는 것 같아요.”

좁은 공간에서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넓은 집은 청소하는 게 부담스러워 작은 집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18평 남짓한 좁은 실내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12평에 가까운 테라스를 보고 바로 마음이 움직였단다. 그리고 평소 꿈꾸던 것들을 담아 직접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도쿄나 홍콩, 런던 등 집값이 비싼 도시의 아파트나 빌라 인테리어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사무실이 위치한 상수동의 작은 카페나 식당, 쇼룸 등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두며, 소재 라이브러리에 가서 건축자재를 둘러보거나 흥미로운 소재의 샘플을 수집해둔 것이 도움이 됐다.이 집을 고치며 가장 신경 쓴 점은 두 가지 무드가 공존하도록 하는 것. “집 복도를 중심으로 거실은 차갑고 모던하게, 테라스 쪽은 빈티지하고 내추럴하게 채우고 싶었어요. 작은 집은 보통 넓어 보이게 하려고 밝은색을 선택하는데, 전 과감하게 어두운색을 사용했어요.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하얀 공간은 저에겐 맞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제 눈에는 좀 밋밋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트렌드인 화이트 벽과 우드 가구 디자인을 조금 바꿔 아트월 전체를 옛날 나무 집처럼 레트로풍 우드 템바 보드로 시공하고 가구는 화이트 계열로 통일했어요. 바닥재는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살렸는데, 이 덕분에 공간이 더 예쁘게 완성된 것 같아요.”

깔끔한 거실과 자못 다른 주방 디자인은 남편이 뜻에 따랐다. 검은색 가구 위에 원목 상판을 얹은 주방 가구와 벽면에 붙여둔 마그네틱 나이프 홀더는 남편이 절실히 원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시공 전에는 가뜩이나 좁은 실내에 검은색 가구를 놓으면 더 좁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이 집에 딱 어울리는 공간이 된 것 같단다. 집의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취미방 겸 운동방 역시 남편의 요청을 반영한 공간인데, 온실과 화단이 잘 보이는 이곳은 지금 부부와 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됐다. 부부는 취미로 타는 자전거를 이곳에 보관하고, 안마기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고양이들은 캣타워에 올라 화단에 놀러 온 새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곤 한다. 거실의 모던한 느낌과 대비되는 따뜻한 색감의 가구와 커튼, 여행지에서 모은 빈티지 소품들, 유럽 시골의 주택에서 볼 법한 올리브그린 컬러 벽은 이 방을 더욱 편안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욕실도 독특하다. 좁은 공간임에도 반 정도를 당당히 차지한 샤워 부스가 눈에 띄는데, 이는 발에 물이 묻는 것을 싫어하는 안주인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 인테리어를 위해 만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만큼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한 소장님만이 재밌겠다며 호응해주었다고 한다. 그 모습에 반해 그분에게 현장 시공을 부탁했고, 김민주 대표는 원하는 욕실을 갖게 됐다. 이렇게 많은 곳을 바꾸고 칠했지만, 인테리어에 든 비용은 자재를 포함해 2천5백만원 남짓. 전반적인 디자인은 아이패드로 그린 도면을 적극 활용해 직접 하고, 매일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며, 직접 구매한 자재를 썼기에 가능한 금액이다.

사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다. 바로 해외의 인테리어 사례에서 볼 법한 온실. 식물에 애정이 많고 늘 식물과 함께 살아온 그는 넓은 베란다 한켠을 채우고 있던 퍼걸러(pergola)를 과감하게 온실로 바꿨다. 식물에 적합한 광량과 습도를 유지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키우던 식물에 몇몇 새로운 식물을 더해 이곳을 채웠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반려 식물들은 이제 바쁜 일상에서 그의 휴식을 책임지는 고마운 삶의 동반자다. “바쁠 때 가드닝이 더 즐겁고 달콤하게 느껴져요. 마음을 어루만져주거든요. 비싼 식물을 새로 들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저와 함께 살아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욱 애정이 가요. 평소 트위터에서 식물에 관한 정보를 얻는데, 새로운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얻기보다는 집에 있는 아이들을 더 잘 키울 방법을 알기 위해 찾아봅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수많은 식물을 돌보는 일이힘들 법한데도, 그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키우던 식물이 죽는 일도 많았지만, 오랜 시간 식물 집사로 살면서 자신과 맞는 식물을 알아낸 뒤에는 새로운 식물을 입양하는 대신 함께해온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늘 온실 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집 안으로 벌레가 들어와도, 가끔 식물의 잎 하나가 시들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의 삶의 태도 덕분에 이런 삶이 가능했을 터다. 김민주 대표가 사랑하는 요소로 가득한 집. 그 집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진 것은 비단 봄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TIP! 김민주가 말하는 온실 설치 노하우

1. 단열재를 선택할 것

온도 조절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극도로 덥거나 추운 계절이 오면 식물들이 버티기 힘들 때가 있다. 따라서 단열이 되는 3~4중 유리로 온실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민주 대표는 비용을 고려해 홑겹 유리로 시공했는데, 그 점이 지금까지도 무척 아쉽다고 한다.

2. 실링 팬을 달 것

온실이 야외와 실내의 중간 정도 공간이긴 하지만, 식물의 건강에 무엇보다 중요한 환기를 위해 실링 팬을 꼭 달아야 한다. 창문을 열더라도 따로 공기 순환 장치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의 온실에 달린 거대한 실링 팬은 1년 3백65일 회전하는 중.

3. 설계 시 난로 자리를 고려할 것

식물의 건강을 위해 난로는 필수다. ‘전기난로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한 그는 첫해 겨울 전기 요금 폭탄을 맞고 지금은 등유 난로를 쓰고 있다. 대부분 연비를 고려해 연탄난로를 쓰는데, 연통 등의 설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 시 난로의 배치나 설비 등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