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가 연상되는 그레이 컬러의 거대한 홈 바. 스케일이 남다른 데다 ‘알덩이 카페 바’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감각적인 포스터까지 붙어 있는 터라 홈 바를 촬영한 곳이 주거 공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홈 바는 부산의 한 젊은 신혼부부 집 거실 한편에 당당히 놓여 있다. “남편이 커피에 진심이에요.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예전엔 부산 서면에서 카페도 운영했어요. 카페 브랜딩 작업은 지금도 하고 있고요. 전 여행하기보다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인데, 저 역시 카페에 가는 건 너무 즐거워요. 가끔 서울에 가면 전시를 보고 카페에 가는 일정을 반복하죠. 하루에 카페 서너 군데에 들르는 날도 많아요.” -김시영

 

거실 한가운데를 넓게 차지하는 거대한 홈 바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시영의 친정아버지와 막 가구 디자인을 시작한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것. 규모와 시설로 보나 디자인 면에서나 여느 카페 못지않다. 앞에는 두 사람이 운영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이름과 두 사람이 만난 때를 레터링으로 장식하고, 구입한 포스터와 직접 만든 포스터로 나머지 공간을 채웠다.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머신, 저울, 드리퍼 모두 카페를 운영했던 노하우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고른 것이고, 평소 즐겨 마시는 원두 종류만 해도 몇 가지나 된다. 심지어 커피 찌꺼기를 버리는 넛박스는 매립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신현승은 틈 날 때마다 거기 서서 커피를 내리곤 한다. 남편의 최애 장소가 홈 바라면, 아내가 가장 아끼는 장소는 소파가 있는 창가 자리. 특히 직접 만든 타일 선반 위에 식물을 놓아둔 부분은, 지금 생각으론 평생 그렇게 두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간다. 비단 그의 눈에만 예쁜 건 아닌지, 이 집을 본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도 바로 그 타일 선반에 대한 정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직접 만든 데다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어서 속 시원하게 답변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단다. 사실, 두 사람이 만든 가구는 이것만이 아니다. 곳곳에 보이는 컬러풀한 목가구와 인터뷰를 나눈 물결 형태의 식탁 모두 두 사람이 직접 만든 것.

“처음에는 원 세 개를 붙인 것 같은 식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음식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은 데다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앉으면 거리가 너무 가까워 좀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에 식탁을 새로 만들었어요. 지하에 디자이너이신 장인어른의 공방이 있어서, 거기서 목공 작업을 배우며 원하는 것 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신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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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신현승

지난해 11월에 결혼한 스물여덟 살 동갑내기 신혼부부. 디자이너 브랜드 알덩이(ALDUNG)를 운영하며 브랜딩 작업을 병행하다 최근 디자인 가구 브랜드 레디 브라운을 론칭했다. 둘 다 홈 카페와 소품 수집에 진심인 편.

 

이들 부부는 가구를 직접 만들어본 노하우를 기반으로 얼마 전 가구 브랜드도 론칭했다. ‘이 공간에 어떤 가구를 놓아볼까?’ 하는 고민이 생기면 낙서하듯 스케치를 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디자인을 완성한다. 직접 써보며 불편한 점은 보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이들이 만든 가구는 디자인이 독특하고 컬러도 튀지 만 불편하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 속에 컬러나 디자인을 녹여본 노하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혼집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소파 위에 걸린 거대한 샹들리에다. 주거 공간에 걸기에는 크기가 다소 큰 데다 컬러풀해서 인상 깊었는데, 예전에 카페를 운영할 때 지인에게 선물로 받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집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저도 원래 화이트 인테리어를 선호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운영하던 카페를 화이트로 채웠었죠. 그런데 조명이 밝을 때 눈이 아픈 데다 현실적으로 청소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에 이사 올 때는 베이지와 그레이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정한 밝은 그레이 컬러로 벽과 바닥을 채웠어요. 여러 그레이 컬러 중 가장 실버와 가까운 이 색이, 제가 좋아하는 컬러풀한 소품은 물론 최근 유행하는 모듈형 가구와도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김시영

 

김시영은 컬러에 진심이다. 튀는 색을 선호하지 않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컬러를 향한 갈망이 생긴 것 같다고 한다(가장 싫어하는 색이 차콜 그레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는 부모님 댁은 그레이 컬러 일색이다. 넓은 거실을 차지한 소파와 가구는 물론, 주방과 강아지를 위한 가구까지 모두 무채색으로 채워져 있다. 신혼부부의 집이 힙한 미국 아티스트의 공간 같다면, 부모님의 공간은 세련된 베를린 디자이너의 집 같다. 오래된 건물의 독특한 구조가 아니었으면 같은 건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이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시영은 컬러에 맺힌 한을 풀 듯 파스텔컬러와 사랑에 푹 빠졌다가,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비비드한 원색에 마음을 빼앗겼다. 혼자 컬러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런 극명한 취향 차이 때문에 김시영이 주방 가구는 노랑으로, 주방의 벽면은 초록으로, 블라인드는 주황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친정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수많은 컬러와 컬러풀한 소품이 혼재함에도 이 집이 어지러워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두 사람의 정교한 디자인적 계산 덕분일 것 같아 이 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뭇 의외다. 김시영은 사실 소품을 선택할 때 깊이 고민하는 편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겨 구매한 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놓은 것이 많다고 한다. 판매하는 물건이 대부분 1천~2천원대인 다이소에 가서도 종종 5만원 넘게 쇼핑한다는 그는 마음에 드는 소품이 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뭇 의외다. 김시영은 사실 소품을 선택할 때 깊이 고민하는 편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겨 구매한 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놓은 것이 많다고 한다. 판매하는 물건이 대부분 1천~2천원대인 다이소에 가서도 종종 5만원 넘게 쇼핑한다는 그는 마음에 드는 소품이 라면 어디든 둘 곳이 생긴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알록달록한 소품을 향한 애정은 당분간 식지 않을 것 같으니 이사 가게 되더라도 이렇게 온갖 색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 거라며 웃어 보인다.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했기에 자연스럽게 이곳은 아직 미혼이거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됐다. 비단 두 사람만의 독립된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간을, 그리고 분위기를 나누는 데 익숙한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일 터. 이곳을 찾아오는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김시영은 음식을 만들고, 신현승은 커피를 내린다. 예쁜 소품들도 친구들과 곧잘 나눈다. 그 덕분에 처음엔 놀러 와서 디자인에 감탄만 하던 친구들은 이제 이 집의 편안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또다시 찾아온다. 두 사람의 신혼집이 웬만한 카페보다도 예뻐 보이는 것은 남다른 감각도 감각이지만, 아마도 두 사람의 사랑과 친구들이 채워준 우정 덕이 클 것이다.

 

김시영·신현승이 말하는 소품 배치 노하우

1. 베이스는 심플하고 깔끔하게
비비드한 컬러의 소품이나 가구가 많을 경우 벽까지 컬러풀하면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거실이나 방의 벽은 그레이 톤으로 하고, 소품을 많이 두지 않는 주방에만 컬러를 활용한 것도 이 때문. 컬러 소품이 많은 편이라면 벽면은 화이트나 그레이 등 깔끔한 컬러로 통일하는 편이 낫다.

2. 비비드한 컬러는 보색을 활용
비비드한 컬러의 소품은 채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비슷한 색끼리 모아놓으면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 이럴 때 보색대비를 활용하면 어색한 느낌을 상쇄할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해볼 것. 파스텔컬러 소품을 색이 비슷한 것끼리 모아두면 무난하게 조화를 이룬다.

3. 생활 속에서 본 컬러 조화를 기억해두자
예쁜 컬러 조합을 생각해내기 어렵다면 주변을 한번 둘러볼 것. 단호박의 노랑과 초록, 당근의 주황과 초록 등 주변의 흔한 채소와 과일 등에서 의외로 예쁜 컬러 조합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