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기사를 진행하며 사진만 보고 섣불리 위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서까래가 살아 있는 실내 공간과 넓은 정원 사진을 보고 이선영 대표의 집이 서울 한복판, 거기다 여러 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빌라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뷰 당일, 놀라움을 뒤로한 채 그가 알려준 부암동의 한 빌라로 향했다.

 

“1990년대 초에 지은 빌라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가족이 거주하셨어요. 그래서 처음 봤을 땐 인테리어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클래식했답니다. 그 시간의 흔적이 좋아 아무것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싶었는데, 벽과 바닥에 앉은 세월의 때는 그대로 둘 수 없어 대리석 바닥과 아이보리색 패턴 벽지만 바꾸고 이사 왔어요.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뒀습니다. 심지어 화장실 수건걸이나 휴지걸이, 거울까지도 기존의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깃든 요소는 모두 지키고 싶었거든요.”이 집을 보기 전날 새벽, 잔디밭에서 수백 마리 호랑이와 사슴이 짝을 지어 껴안고 뒹구는 꿈을 꾼 그는 다음 날 이 집과 1층 베란다 앞에 펼쳐진 정원을 보며 운명을 마주한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남편은 “난 이 집에서 꼭 살아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던 그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하고 무서웠는지 기억난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곤 한다.

 

사실 주방과 거실 천장을 차지하고 있는 짙은 원목 서까래와 어두운 몰딩은 화이트 톤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요즘 트렌드와 사뭇 거리가 멀어 한눈에 반하기는 쉽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첫눈에 그것들이
지닌 묵직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요소는 그가 오랫동안 수집한 앤티크 가구, 소품, 작품들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채우고 있다. 특히 이 집에 맞춘 듯 적재적소에 자리 잡은 가구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담은 집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집에 이사 오며 산 물건이 거의 없다는 점. 결혼하면서 바꿔야 했던 침대 하나를 빼고, 모두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것들이다. 이 집을 가족의 역사를 담은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기에 아무거나 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다이닝 룸 한 면을 채운 거대한 그릇장과 8명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큰 원목 식탁도 그가 이사 오기 전 연남동 주택에서 살 때부터 쓰던 것이다. 그 거 대한 가구를 빼내고 나서야 집이 참 넓은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웃는 그. 그는 앞으로도 뭔가 필요하면 아주 신중하게, 바꾸지 않고 평생 쓸 물건만으로 하나하나 채워갈 예정이라고 한다.

 


@badapasta
이선영

방송 작가로 일하다 20대 중반,
이탈리아로 떠나 그곳에서 요리를 배웠다.
귀국 후 ‘바다 파스타’를 시작을 다양한
음식점을 오픈했고, 현재는 동남방앗간
두 곳을 운영하는 중이다.


 

“전 오래된 것들을 사랑해요. 원래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을 좋아하죠. 어릴 때에는 커피를 마시는 어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테이블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클래식한 찻잔에 대추차를 따라 마시곤 했대요. 그래서 이탈리아에 공부하러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곳은 오랜 역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첫 번째 꿈을 좇아 방송 작가가 됐던 그는, 어느 날 두 번째 꿈이던 요리사가 되기 위해 그간 모은 돈을 모두 들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소위 트렌드의 최전선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에 몸담고 있던 그가 선택한 곳이 뉴욕이나 파리가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점이 사뭇 의아했는데, 그의 성향을 알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가 처음 낸 책이 단순한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 북이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돌며 현지 할머니들에게 직접 배운 집밥 레시피를 담은 책이라는 사실도 성향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앤티크 사랑은 그가 운영하는 와인바, 동남방앗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가구와 소품이 잔뜩 자리한 이곳을 보며 사람들은 ‘한국에서 만나는 파리’라거나 ‘빈티지한 분위기에 취하게 되는 곳’이라며 감탄한다. 동남 방앗간을 채운 가구 대부분은 그가 동네 재활용센터를 돌아다니며 구한 진짜 빈티지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오래된 가구나 쓰레기일지 몰라도,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인 것이다. 이렇게 모인 컬렉션이 그의 손을 거쳐 제자리를 찾고, 또 다른 가치를 얻게 됐다. 눈이 보배라더니, 많고 많은 앤티크 가구와 소품 중 옥석을 가려내는 그만의 노하우가 궁금해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마음에 드는 것. 파리의 생투앙 벼룩시장에 갔다가 한눈에 반해 구입한 샹들리에나, 연남동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갤러리에서 구입한 강아지 그림처럼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한다. 그리고 샹들리에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데 든 많은 비용이나 “아가씨는 이 그림 비싸서 못 사요”라는 말을 들은 경험 등이 더해져 그것들은 그만의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모은 것이 꽤 많아져 창고 세 곳을 꽉 채운 적도 있다. 여기로 이사오기 전에 꽤 많이 처분했지만 아직도 지하 창고에는 그가 아끼는 물건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는 수시로 이 물건들을 이용해 집 안 곳곳을 바꾸곤 한다.

 

이 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또 있다. 바로 베이지 톤의 대리석 벽난로다. 벽난로가 인테리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벽난로 형태의 모형이나 장식을 두는 집은 많이 봤지만, 실제로 나무를 때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가 집 한가운데 자리한 모습은 쉽게 볼 수 없기에 특이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곳을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로 꼽았다.
“저희는 11월부터 벽난로를 때기 시작해요. 온 가족이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곤 하죠. 생선구이나 스튜, 바비큐 등도 여기서 해 먹어요. 집 안에 연기나 냄새가 꽉 차지 않고 환기구로 잘 빠져나가거든요. 대리석 전문가 친구가 보더니,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이런 벽난로를 만들 수 없다며 귀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렇듯 오랫동안 쌓인 시간의 흔적에, 네 식구의 이야기를 더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 집은 이 대표에게 힐링의 공간이다. 결혼 전에 살던 연남동 주택도 좋았지만, 쿠킹 스튜디오를 겸한 탓에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했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경기도 양평 어딘가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안기며 완벽한 휴식을 선사한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싹 사라진다니, 평생 여기서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결코 헛된 꿈은 아닐 듯하다. 나와 꼭 닮은 집을 갖는 것도, 평생 살고 싶은 집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 둘을 함께 이룬 이선영 대표. 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각 작품이나 가구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를 보며 자기만의 취향으로 오롯이 채운 집에 사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TIP

이선영이 말하는, 구옥으로 이사 갈 때 확인할 사항

1. 배관을 점검할 것
이 집으로 이사 오며 보일러 배관 문제로 고생했고, 다른 집을 리모델링할 때 배관이 손상되어 누수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래된 집은 배관이 노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약해지거나 파열되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 펴보자. 보일러 역시 마찬가지다. 작동 여부를 확인한 뒤 웬만하면 새것으로 교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2. 전부 다 바꾸지는 말 것
이 대표가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남겨둔 것이다. 트렌드에 따르느라 오래된 것들을 바꾸거나 고치면 시간이 흐른 뒤 복원할 수 없으므로 바꾸기 전에 충분히 지내보거나 생각해봐야 한다. 오랜 세월에서 나오는 클래식한 무드가 분명히 있다.

3. 단열 상태 확인은 필수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이 단열이다. 어떤 부분은 따뜻하고 어떤 부분은 굉장히 춥기 때문이다. 겨울에 이사하면 확인할 수 있지만, 여름에는 외풍이 얼마나 심한지 모를 수 있다. 창호가 탄탄한지, 단열은 잘되는지 충분히 점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