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희 일기 우울증회복일기

김설기

김설기가 일기를 꾸준히 쓰기 시작한 지는 8년이 되어간다. 그날 한 일을 스케줄러에 빼곡히 적는 것으로 시작한 일기는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을 거치며 구체적인 감정을 써놓은 일기장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성격이었어요. 대학에 가면서 이전과 바뀐 문화나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답답할 때마다 일기장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일기의 내용은 대체로 우울하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단순히 일어난 일을 나열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일기를 더 열심히 쓰게 됐는데, 지금 내가 기분이 어떻고 무엇 때문에 힘든지 글로 쓰며 정리하다 보니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게 됐고, 그렇게 쌓인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한다. 일기를 쓰면 우울증 치료에 실제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권하기도 한다. 꾸준히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나중에 돌아보면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김설기는 병원을 다니며 상담 치료를 받은 영향도 있지만 일기 쓰기가 우울증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한다. 특히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가족과 여행을 떠난 3개월 동안 쓴 일기는 김설기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소중한 기록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우울감에서 이전보다 훨씬 빨리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여전히 감정 기복이 심했어요. 왜 낫지 않는 걸까, 내가 문제가 많은가 하는 생각에 자책하던 시기였죠. 그래서 여행 일기의 첫 부분은 ‘더 쉬고 싶다, 나가고 싶지 않다’는 등 무기력한 상태를 기록한 내용이 많아요. 그런데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물리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놓이니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가 하루하루 일기에 그대로 기록돼 있어요. 그 여행을 다녀온 뒤엔 더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어요.” 그의 인생에서 말 그대로 ‘기록적인’ 기록이 된 이 3개월간의 일기를 김설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념하고 싶었다. 나중에 혼자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다시 우울에 빠지더라도 씩씩하게 극복해낼 수 있도록 이 일기를 책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일기는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우울증 회복 일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됐고, 이 책은 우울증을 가진 다른 이들과 김설기를 잇는 매개체가 돼 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일기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이 제게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에 울컥했어요. 그동안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8년간 일기를 지속적으로 썼다는 사실만으로 ‘어쩌면 나도 뭔가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김설기는 여전이 우울증과 싸우며 그 마음을 표현한 결과물을 인스타그램 계정(@heal.seol)에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우울증을 처음 앓던 시간의 기록을 모아 <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니에요>라는 책을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