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아카이브는 성수동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빈티지 매장이다. 구제 옷 가게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상시 열리는 숍이 아니라는 것 말고도 밀리언 아카이브가 특별한 이유는 기획력에 있다. 빈티지 원피스만 파는 ‘원피스샵’, 아메리칸 빈티지만 취급하는 ‘아메카지샵’, 못생긴 그림이 그려진 스웨터만 파는 ‘어글리스웨터샵’ 등 몇 달에 한 번씩 뚜렷한 컨셉트를 잡아 한 종류의 제품만 선보인다. 그 덕에 밀리언 아카이브는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큰 지지를 받으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밀리언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정은솔 대표의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 클라이언트 잡이 아닌 자신의 것을 만들고 싶어서 2년 전쯤 밀리언 아카이브를 시작했는데, 10여 년 전 빈티지 의류를 너무 좋아해 광장시장에서 서른 벌을 떼어다 삼청동에서 판 것이 시작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바에야 내가 좋아하는 걸 팔아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쁘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때 팔던 제품을 에이랜드에 납품하게 되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런던에 갔다가 ‘브릭레인 마켓’을 알게 됐어요. 큰 폐공장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더라고요. 저도 거기서 빈티지 제품을 팔았어요. 예술과 상업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함께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보며 많이 배웠죠. 서울에서는 성수동에 공장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나도 성수동에 공간을 만들어 내 브랜드를 키우겠다’고 마음먹게 됐죠.”

정은솔은 디자인을 하며 번 돈을 모아 작년 성수동에 7~8평 정도 되는 2층 창고를 빌려 일본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빈티지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본업이 있으니 한 달에 2~3일 정도만 열었고 한 품목을 대량으로 살수록 더 낮은 가격대로 구매가 가능해 그에 맞게 컨셉트를 하나 정해 기획전처럼 판매하게 된 것이 반짝이는 차별성이 됐다.

작년 겨울 ‘어글리 크리스마스 스웨터 숍’과 올여름 열린 ‘원피스샵’이 흥 하면서 정은솔은 지금의 40평 남짓한 공간으로 이사했다. “전에는 저렴한 가격과 혹하는 기획으로 어떻게든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데 신경 썼다면 이제는 퀄리티를 고민해야 될 시기예요. 지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그분들이 좀 더 만족스러워하며 문을 나설 수 있게 할까를 생각해야죠. 가장 최근에 연 ‘아메카지샵’에서 이전 기획전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을 구비해놓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밀리언 아카이브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 플리마켓’이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여성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업물을 가지고 나와 파는 창작 플리마켓이다. “주변에 창작을 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거나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이 많았어요. 사실 예술을 전공한 여성들이 작업을 계속 해나가려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거든요. 내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게 싫었어요. 내 공간을 그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주면서 그들이 브랜드 구축에 대한 실험을 자유롭게 해보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사실 빈티지 제품 판매가 제 목표는 아니에요. 이것을 통해 자본을 만든 뒤 성수동에 2백 평 규모의 빈티지와 아트 계열 플리마켓을 만들고 싶은 게 제 궁극적인 꿈이에요. 밀리언 아카이브는 큰 그림의 작은 기획일 뿐이죠.” 정은솔은 늘 자본이 있는 곳에는 매력적인 기획력이 약하고, 아이디어가 있는 곳에는 자본이 없는 게 딜레마라고 생각해왔다. 밀리언 아카이브를 찾는 손님들에게 재미난 기획을 통해 작은 규모로 시작해도 얼마든 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제가 롤모델 삶아 바라볼 수 있는 여성 사업가가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사업이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라도 그들에게 좋은 표본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를 계속 알리고 있는 거고요.”

정은솔은 현재 여성 창작자 3명과 함께 빈티지를 표방한 어글리 스웨터,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스웨트셔츠를 만드는 ‘어글리콜렉터즈’라는 브랜드를 구체화하고 있다. 곧 열릴 ‘크리스마스 스웨터 샵’을 성수동이 아닌 다른 동네에서 팝업스토어 형태로 선보이는 것도 고민 중이다. “아이디어는 정말 많아요. 빈티지 마켓뿐만 아니라 이런 창작자 마켓을 계속 발전시켜서 밀리언 아카이브를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게 목표예요. 열심히 일해서 몇 년 안에 큰 창고를 마련해 토요플리마켓에 참여하셨던 여성 창작자들을 모두 초대해 한국에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킬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정은솔이 선보이는 귀엽고 엉뚱한 제품들이 궁금하다면 당장 12월 초에 열릴 ‘크리스마스 스웨터 샵’부터 찾아가 보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크리스마스 아이템, 정은솔이 토요 플리마켓 창작자들과 함께 만든 자체 제작 상품들을 잔뜩 만날 수 있다. 밀리언 아카이브의 정보는 @millionarchive에 업데이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