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링에 관한 책을 펼치면 늘 화이트 컬러에 대한 예찬이 쏟아진다. 베이식한 셔츠, 무지 티셔츠 등 컬러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화이트는 시대와 연령, 계절을 초월해 사랑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디자인 면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에도 많은 디자이너의 런웨이에 화이트 컬러의 기운이 드리웠다. 디자이너들은 올겨울 눈처럼 하얀 원단으로 한 가지 무드에 치중하지 않고 저마다 이상적인 여인상을 그려냈다. 그중 에디터의 눈을 사로잡은 스타일은 단정하고 깨끗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룩. 자크뮈스와 질샌더, 로에베 등에서 화이트 컬러로 롱 앤 린 실루엣을 그려내며 정제된 미니멀리즘을 표현했다. 디테일 없이 툭 떨어져 얼음장처럼 차갑고 매끈한 느낌을 주는 룩은 모던한 아름다움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반면 토리 버치와 스텔라 매카트니는 시스루와 레이스 소재를 더해 손대면 쓰러질 것 같은 여성의 가녀리고 순수한 이미지를 화이트 컬러로 표현했다. 모델들이 워킹할 때마다 속살이 비치는 얇은 소재의 옷은 눈꽃처럼 아스라이 흔들리며 여성스러운 무드를 극대화했다. 이 밖에도 알렉산더 맥퀸과 이자벨 마랑 컬렉션에서 패딩이나 레더 소재와 만난 화이트 컬러는 어딘가 모르게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는 강인한 룩으로 완성되기도 했다. 무색무취일 것 같은 화이트도 소재와 디테일에 따라 이렇듯 백팔십도 다른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 게다가 블랙에 비해 디테일이 도드라지고 냉랭한 겨울 거리를 밝히는 효과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팔색조 같은 매력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첫날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룩을 시도하는 건 어떨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상태 다이어리를 대할 때 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