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구속 연애 커플 집착

나 빼고 다 싫어

우리는 각각 서울과 춘천에 떨어져 지내는 ‘롱디’ 커플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솟구치는 연애 초에는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광속으로 주파해 평일에도 두세 번 만나곤 했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말에만 보게 됐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주말에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로 약속을 잡았다가 그다음 주말까지 내 연락에 답장 한 번 하지 않을 만큼 단단히 삐친 A를 경험한 후부터는 주말=데이트가 둘 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됐다. 그것까진 괜 찮다. 문제는 평일에도 약속하려면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 정시에 퇴근하면 친구들과 곧잘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었는데, A가 하도 싫어해서 1년 가까이 친구들을 못 만나고 있다. 처음엔 술 마시는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청첩장을 받으려고 커피숍에서 만날 때조차 볼멘소리를 하니까. 영업팀이라 회식이 잦은 편인데 이 부분을 이해시키는 데도 1년이 걸렸다. 회식 중에 내가 카톡에 답장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면 혀 짧은 소리로 구사하던 문장을 점차 맞춤법을 정확히 지키면서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티를 낸다. 가끔 A의 눈치를 감당하며 약속을 이행(?)할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무조건 이동할 때마다 동석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한다. 이 또한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다. 2년 동안 익숙해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다들 기함한다. 얘들아, 나는 정말 괜찮아…. P( 제약 회사 영업팀 사원, 34세)

 

진짜 내가 문제야?

D와 1년간 만나고 헤어졌다, 그것도 아주 나쁘게. D의 친구들은 여전히 나를 질투심에 눈이 먼 이상한 애로 생각하겠지만 오해를 풀고 싶다. D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여자 사람 친구 E가 있다. 나랑 사귀기로 한 바로 다음 날, D는 나를 E에게 제일 먼저 소개했을 정도다. 그런데 처음 함께한 술자리에서부터 E의 태도가 조금 거슬렸다. 안주로 해산물을 시키자는 내 말에 E는 “D가 어패류 알레르기 있는 거 모르는구나. 우린 무조건 고기야“라며 고기 메뉴를 시켰다. 나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D를 쳐다봤고, D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날 이후 E와 한 달에 두어 번은 만났다. 다른 때는 D가 내게 거의 모든 부분을 맞춰줬기 때문에 D가 친구들을 만나는 그 시간만큼은 존중해주고 싶었고, 사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이니까 친해지고도 싶었다. 그런데 내 통금 시간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려는 D에게 “쟤는 지하철 타고 20분이면 가잖아. 역까지 데려다주고 우리끼리 더 마시자”라고 하거나 나는 모르는 둘만의 과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과제 때문에 D의 친구 모임에 가지 못했는데 그럴 경우 D가 학교로 데리러 오는 편이라 언제 오느냐고 카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E에게서 왔다. ‘야, D 우리랑 오랜만에 만난 거 몰라? 네가 자꾸 카톡 하니까 D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위기 산만하게 굴잖아.’ 그날 D와 대판 싸웠다. 내 친구들이 뭐가 문제냐며 은근히 친구들을 두둔하던 D는 급기야 해선 안 될 말을 했다. “애들이 너 진짜 이상하대, 왜 친구를 질투하느냐고.” 이 패거리와 더 얽히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 관계를 바로 정리했다. D는 멀쩡한 사람 이상한 애로 만들지 말고 그냥 E랑 결혼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M( 대학원생, 26세)

 

동생인데요

오빠의 연애사를 모두 알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여동생으로서 절대 잊히지 않는 오빠의 구 여친이 있다. 오빠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사귄 언니라 더 생생히 기억난다. 그 언니를 처음 본 건 집 앞 지하철 역이었다. 만날 때마다 둘이 번갈아 서로 데려다주곤 했다는데, 그날은 언니가 오빠를 데려다주는 날이었나 보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앞에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고, 오빠는 옆에 있던 여자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에 안경을 낀, 교회 언니 같은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수줍게 인사하고 집에 가면 오빠를 놀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치 있게 빠져 먼저 집으로 왔다. 그러고 며칠 뒤, 오빠가 오랜만에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렸길래 댓글을 달았다. ‘멋진 척 오지구요!’ 며칠 뒤 오빠는 또 사진을 올렸고 나는 또 댓글을 달았다. ‘집에서나 그렇게 해봐. -_-‘ 얼마 후 미니홈피에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오빠의 여자친구였다. ‘이 언니가 나한테? 무슨 일이지?’ 궁금증을 안고 클릭한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ㅇㅇ야, 안녕. 나 ㅇㅇ 언니야. 우리 전에 지하철역 앞에서 한 번 만났었지? 다름이 아니라 오빠 게시물에 댓글 좀 그만 달면 안 될까? 과에서 우리 둘이 사귀는 거 다 아는데 자꾸 다른 여자가 댓글 다는 게 보기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럼 부탁할게. ^^’ 태어나서 그렇게 황당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언니 사회생활은 잘하고 있으려나? S( 출판사 편집자, 3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