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호 건축가 설계 인테리어

이상과 현실을 잇는 플랫폼

경계 없는 작업실
문주호

대학 동기였던 조성현, 임지환, 문주호가 2013년 창업한 경계 없는 작업실은 후암동 복합 주거 공간과 테트리스 하우스 등 필지에 최적화된 활용도 높은 건축물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식물관PH를 건축했고, 2018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경계 없는 작업실 지금은 3명의 파트너 각자가 주력하는 영역을 두어 좀 더 세분화했다. 평소 산업과 기술의 가치를 탐구한 조성현 소장은 현재 스페이스워크라는 랜드북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간 가치 최적화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임지환 소장은 제로투엔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이끌며 시행부터 시공까지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경계 없는 작업실의 디자이너, 기획자로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스페이스워크와 경계 없는 작업실은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한 기업의 사무동 기획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리브랜딩 개념으로 접근해서 진행하고 있고, 서대문구의 작은 주상 복합 건물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최근 완료한 프로젝트는 수서동에 자리한 ‘식물관PH’. 커피를 마시며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건축주가 직접 기획한 브랜드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는 토지 구매부터 건물 완공까지 작업했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협업해서 진행했다.

기억에 남는 작업 역시나 첫 작업인 테트리스 하우스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례적으로 우리가 토지 검토부터 함께했는데 건축주의 예산이 굉장히 적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예산이 한정된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원룸 구성과 독특하고 위트있는 디자인을 고민했고, 더 나아가 브랜딩 작업까지 결합해서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경계 없이 작업하는 것의 실제적인 가치도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나의 공간 후암동 복합 주거 공간. 건축주와 친해서 날씨 좋을 때는 옥상에서 같이 술도 마신다. 남산 아래에 위치해 풍경도 멋있고 공간 구석구석에 우리가 반영하고자 했던 부분이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아한다. 1층 길부터2층까지 사람들의 동선을 연결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 조건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해냈다는 점에서 재밌어 하는 면도 있다.

균형 찾기 하나의 관점에 쏠리지 않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특히 협소 주택처럼 작은 필지는 예산과 토지의 제약 조건이 굉장히 많아 어렵다. 따라서 건축주도 만족스럽고 사용자나 건축가도 만족스러운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제일 중요시한다. 좋은 디자인에 몰입하면 디자인 자체에 매몰될 수도 있고, 사업성 때문에 디자인을 등한시할 수도 있다. 특히 소규모 작업에서는 어느 하나의 균형추가 무너지면 건물을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정된 에너지를 분배해서 구도와 집중력과 협업을 계속 모색한다. 그래서 ‘이건 경계 없는 작업실이 한 디자인이네’라고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간의 가치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순하게 디자인적인 취향을 고집해서 프로젝트의 목표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지양한다. 프로젝트 자체에 집중해서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 최적의 모습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공간을 완성했을 때 어떤 분은 거기서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떤 분은 거기서 생활해야 하고, 어떤 분은 무언가를 운영해야 한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만드는 것이고, 만든 후에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건물 목적에 따라 균형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건축에서 ‘나’를 빼기 물론 내 이름이 알려지길 욕망하는데, 그건 과정이자 결과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경계 없는 작업실의 구성원들이 아이덴티티를 자유롭게 표출하면서 우리가 가진 기술과 기회 안에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그래서 디자인은 직급과 상관없이 열려 있다. 인턴의 프로젝트가 끝까지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 서버에 각자가 작업한 것들을 공유하고 누구든지 그것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팀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다. 서로 정말 이게 좋은 것인지를 놓고 양보 없는 토론을 해나간다. 그래서 이게 누가 만든 것인지는 중요하지않다. 이 아이디어가 이 공간을 지을 때 최선이라는 결론만을 믿고 작업한다.

공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하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쓰는 게 결국에는 우리가 제일 바라는 모습이니까.

근래의 고민 땅부터 자본, 디자인과 콘텐츠까지 무수한 영역을 결합해서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데 이 연결지점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건축주, 건축가, 디자이너, 공간 기획자의 언어가 다 다르다. 의견을 조율하며 설계하는 시간에 따라 프로젝트 전체의 기간이 줄어들거나 늘어나기도 한다. 보다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서로 오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예를 들면 ‘모던하면서 클래식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만드느냐?(웃음) 그래서 코디네이션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나쁜 건축 사용되지 않는 건축? 건축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건축의 다원성을 지향하는데, 의미 있고 다양한 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경험의 다양성을 확보해주는 건축을 좋아한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동대문 근처 통일시장. 대학교 다닐 때 리서치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길 다녔는데 통일시장이 굉장히 재밌는 게 스무 채 가까운 건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결합됐다. 옆집과 연결하기 위해서 이상한 자리에 복도를 내고, 길이 너무 복잡해서 통일시장 안에서도 물건을 배송하는 분이 따로 있을 정도다. 건물과 건물 사이 세 개 층 정도를 합친 공간에 뚜껑을 덮어서 성당으로 쓰는 모습도 재밌다. ‘발견’의 재미다. 건축 디자이너로서 기획자로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움의 가치를 신봉하는데 그 새로움은 발견을 통해 조합되어 만들어지곤 하니까.

서울시의 도시계획 건축 공간을 판단할 때 경험을 가치로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 열렬히 지지하는 편이다. 예전의 뉴타운이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 아파트들을 짓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가로주택’이라는 제도가 있다. 작은 규모의 재개발인데 최소한의 길은 남겨두고 그 안에서 오래된 건물들을 재건축하라는 취지다. 스페이스워크에서 가로주택 정비 사업에 쓰는 설계 자동화 프로세스를 만들었고, 그걸 통해서 경계 없는 작업실과 서울시에 건축 자문을 해나가고 있다. 그곳에 살게 될 분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그들에겐 새 건물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로로 만드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시간의 흐름과 연속성, 도시에서 우리의 삶과 문화, 그 변화의 과정이 단순한 논리로 파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맞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로주택 프로젝트가 최선은 못 돼도 차악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가치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가치를 품은 공간이 현실적인 조건과 이어지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건축가의 중요한 사명이다.

젊은 건축가상 작년에 나, 임지환, 조성현 3명이 같이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서 받았다기보다는 우리가 도전하는 방향을 응원해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방향이 그래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도 확인할 수 있었고.

서울에서 건축가로 사는 일 우리가 만든 공간을 쓰는 사람들과 공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SNS를 하듯이 좀 더 공간으로서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게 재밌다. 공간이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고. 나 역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뛰어난 공간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이 만든 곳을 경험하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언젠가 내가 해보고 싶은 건축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큰 상업시설에도 관심이 많다. 상업 건물이 준공공적인 성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카페도 쇼핑몰도. 한발 더 나아가서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어디서 자고, 학교는 이런 곳에 가고, 이런 길을 거닐며 여기로 데이트하러 가고. 가끔 삶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도시를 만드는 상상을 한다.